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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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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4
○三年四月 御邇英閣하야 謂講讀官曰 易旨精微하야 朕每以疑難問卿等하니 得無爲煩乎 曾公亮對曰 臣等幸承聖問하야 懼不能對하니 豈敢言煩이리오
帝曰 卿等宿儒博學이라 多所發明하니 朕雖盛暑 亦未嘗倦호라 但恐卿等勞爾 丁度復進曰 自古帝王 臨御日久 非內惑聲色이면 則外窮兵黷武어늘 陛下卽位三十年 孜孜聖學 雖堯舜之聡明이라도 不是過라하고 因頓首稱謝하더라
尋詔講讀官當講讀者立侍敷對하고 餘皆坐侍하니 自景祐以來皆立侍러니 至是遂爲永制하다
嘗講書無逸할새 帝曰 朕深知享國之君 宜戒逸豫니라 楊安國言 舊有無逸圖하니 請列於屛間한대
帝曰 朕不欲坐席背聖人之言이라 當別書置之左方이라하고 因命丁度取孝治聖治廣要道四章하야 對爲右圖하고 乃令王洙書無逸하고 蔡襄書孝經하고 又命翰林學士承旨王拱辰爲二圖序 而襄書之하다


23-1-24
황우皇祐 3년(1051) 4월에 인종이 이영각邇英閣에 납시어 강독관講讀官에게 이르기를, “≪주역周易≫의 뜻이 정미精微하여 짐이 매번 의심나고 어려운 것을 경들에게 물으니 번거로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니, 증공량이 대답하기를, “신들은 다행스럽게도 성상의 질문을 받들어 대답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어찌 감히 번거로움을 말하겠습니까.” 하였다.
인종이 이르기를, “경들은 숙유宿儒로서 박학博學하므로 밝혀낸 것이 많으니 짐이 비록 한여름이지만 또한 나태한 적이 없었다. 다만 경들의 수고가 염려될 뿐이다.” 하니, 정도丁度가 다시 진언進言하기를, “예로부터 제왕이 즉위한 지 오래되면 안으로 성색聲色에 유혹되지 않으면 밖으로 끝없는 전쟁을 일으켰는데 폐하께서는 즉위한 지 30년이 되었는데도 성학聖學을 부지런히 하시니 비록 요순堯舜 같은 총명한 분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이에 돈수頓首하고 칭사稱謝하였다.
이어 강독관講讀官 중에 강독講讀을 담당한 자는 입시立侍하여 대답하고 나머지는 모두 좌시坐侍하라고 명하니, 이래로 모두 입시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마침내 영구적인 제도로 확립되었다.
수무일도受無逸圖수무일도受無逸圖
일찍이 ≪서경書經≫ 〈무일無逸〉편을 강할 때에 인종이 이르기를, “짐은 재위에 있는 임금은 안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니, 이 말하기를, “옛날에 〈무일도無逸圖〉가 있었으니, 병풍 사이에 세워두소서.” 하였다.
인종이 이르기를, “짐은 성인의 말씀을 등지고 앉아 있고 싶지 않다. 특별히 써서 왼쪽에 두겠다.” 하고, 정도에게 명하여 ≪효경孝經≫의 〈천자天子〉ㆍ〈효치孝治〉ㆍ〈성치聖治〉ㆍ〈광요도廣要道〉 네 을 가지고 우도右圖를 만들게 하고, 이어 에게 명하여 〈무일〉편을 쓰게 하고, 에게 ≪효경≫을 쓰게 하고, 또 한림학사翰林學士 승지承旨 에게 두 서문序文을 짓게 하고 채양에게 쓰게 하였다.


역주
역주1 景祐 : 宋 仁宗 때의 연호로 1034년부터 1037년까지이다.
역주2 楊安國 : 宋나라 密州 安丘 사람으로, 자는 君倚이다. 五經으로 進士가 되어 大理寺丞과 國子監直講이 되었고, 仁宗 때에 崇政殿說書, 天章閣待制, 龍圖閣直學士를 역임하고 翰林侍講學士를 거쳐 給事中에 올랐다. 그의 講說은 한결같이 注疏를 위주로 하고 자신이 밝혀낸 것은 없었다.(≪宋史≫ 권294 〈楊安國列傳〉)
역주3 王洙 : 997~1057. 宋나라 應天府 宋城 사람으로, 자는 原叔이다. 벼슬은 翰林學士를 지냈고, 박학하여 통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史記≫와 ≪漢書≫를 교정하고, 禮儀와 雅樂의 制度를 제정하는 데 참여하였다. 저서에 ≪易傳≫과 ≪王氏談錄≫이 있다.
역주4 蔡襄 : 1012~1067. 宋나라 福建 楓亭 東宅村 출신으로, 자는 君謨이고, 시호는 忠惠이다. 蘇軾, 黃庭堅, 米芾과 함께 송나라의 4대가로 불릴 만큼 글씨가 뛰어났다. 처음에는 王羲之 풍의 글씨를 썼으나, 후에 顔眞卿의 글씨를 배워 骨力이 있는 독자적 서풍을 이룩하였다. 楷書, 行書, 草書, 隷書의 각 體 및 飛白體에 이르기까지 교묘한 솜씨를 발휘하였다고 한다.
역주5 王拱辰 : 1012~1085. 宋나라 開封 咸平 사람으로, 자는 君貺이다. 慶曆年間에 翰林學士, 知開封府, 御史中丞을 역임하였다. 神宗 때에 王安石의 保甲法을 반대하였고, 彰德軍節度使로 벼슬을 마쳤다. 시호는 懿恪이다. 저서에 ≪治平改鑑≫과 문집이 있다.
역주6 [天子] : 저본에는 없으나, ≪宋史全文≫ 권9상 〈宋 仁宗〉에 의거하여 ‘天子’를 보충하였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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