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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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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18
○皇慶二年이라 春正月 帝以去秋至春亢旱으로 於宮中焚香默禱하고 遣官分禱諸祠하니 甘雨大注
又問弭災之道하니 翰林學士程鉅夫 擧湯禱桑林事어늘 帝奬諭之하다


28-2-18
황경皇慶 2년(1313) 봄 정월에 인종이 지난해 가을부터 이해 봄까지 크게 가뭄이 든 것 때문에 궁중宮中에서 을 사르고 묵묵히 기도한 다음 각 지역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여러 사묘祠廟에 기도하게 하니, 단비가 크게 내렸다.
또 재앙을 그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으니, 한림학사翰林學士 를 거론하여 대답하였는데, 인종이 칭찬하며 훈유訓諭하였다.


역주
역주1 程鉅夫 : 1249~1318. 본명은 文海, 호는 雪樓․遠齋로, 建昌 南城縣 출신이다. 武宗의 이름 海山을 휘하여 자를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世祖 至元 원년(1264)에 선무장군에 제수되고, 翰林院修撰, 集賢直學士, 秘書少監, 禦史臺, 廉訪司 등을 역임하였다. 1289년 승상으로 있던 桑哥가 횡포를 부려 전국에 동요가 일자 정거부가 상소를 올려 권력 남용을 억제하고 백성을 긍휼할 것을 청했는데, 이에 상가가 대노하여 처형하라고 여섯 차례나 청했지만 세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閩海道肅政廉訪使, 江南湖北道肅政廉訪使 등을 역임하였는데,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成宗實錄≫과 ≪武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사후에 大司徒로 추증되고 楚國公으로 봉해졌다. 시호는 文憲이다. 저서로 ≪雪樓集≫이 있다.
역주2 湯임금이……故事 : 탕왕이 夏나라 桀을 정벌한 후 7년 동안 혹독한 가뭄이 들었는데, 太史가 점을 치고 하는 말이 “사람을 희생으로 하여 비를 빌어야 한다.” 하였다. 탕왕이 이에 자신이 희생이 되겠다고 자청하여, 齋戒하고 모발과 손톱을 자르고 자신의 몸을 흰 띠풀[白茅]로 싸서 희생의 모양을 갖추고 桑林의 들에 가서 기도하면서 여섯 가지 일로써 자책하기를 “정사에 절도가 없지는 않았는가. 백성들이 생업을 잃었는가. 궁실이 높은가. 부녀자의 청탁이 성한가. 뇌물이 행해지는가. 아첨하는 무리가 많은가.[政不節歟 民失職歟 宮室崇歟 女謁盛歟 苞苴行歟 讒夫昌歟]”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천 리 지방에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史略≫ 권1 〈殷〉)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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