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月에 亦馬剌等處女直野人刀兀等二百餘人來朝貢馬하니 命爲指揮千百戶等官이라
上因謂侍臣曰 夷狄爲患이 自古有之호대 未有若宋之甚者라
若究禍之根本이면 蓋自煕寧至宣和五六十年은 小人用事하야 變易法度하야 民苦征徭하고 軍無紀律하야 國家政事가 日陵月替하고 遂爲夷狄所侮하야 致有此禍하니
高宗南渡엔 政宜委任忠良하야 恢復舊疆하야 洗雪大恥어늘 乃復用小人하고 力主和議하야 爲偸安之計하야 以岳飛之忠으로 卒死於秦檜之讒하니 小人之敗國家如此니라하다
9월에 역랄亦剌과 마라馬剌 등지에 사는 여직女直의 야인野人 도올刀兀 등 200여 명이 와서 조회하고 공마貢馬를 바치니, 명하여 지휘指揮, 천호千戶, 백호百戶 등의 관직을 주게 하였다.
선종이 인하여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이적夷狄의 근심이 예로부터 있었지만 송宋나라처럼 심한 경우는 없었다.
만일
화禍의
근본根本을 규명해볼 것 같으면, 대개
연간에서부터
연간에 이르기까지 5, 60년 동안은
소인小人들이
용사用事하여
법도法度를
변역變易하는 바람에 백성들은 조세와 부역에 시달리고 군대에는
기율紀律이 사라져서
국가國家의
정사政事가 갈수록 쇠퇴하였고, 마침내
이적夷狄에게 모욕을 당하여 이런
화禍가 이르고 말았다.
따라서
고종高宗이 남쪽으로
천도遷都하였을 때는 정사를 마땅히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에게
위임委任하여 옛 강토를 회복함으로써 큰 치욕을 설욕했어야 했는데, 도리어 다시 소인을 기용하고 힘써
화의和議를 주장하여 편안함을 훔치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의 충성으로도 끝내
의 참소를 받고 죽게 되었으니, 소인이 국가를 패망하게 한 것이 이와 같았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