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宗欲相樞密使魏仁浦한대 議者以仁浦不由科第하니 不可爲相이라한대 世宗曰 自古用文武才略者爲輔佐니 豈盡由科第邪아
又甞問大臣可爲相者於兵部尙書張昭하니 昭薦李濤한대 世宗愕然曰 濤輕薄無大臣體어늘 朕問相而卿首薦之는 何也오
對曰 陛下所責者細行이요 臣所擧者大節也라 昔晉高祖之世에 張彦澤虐殺不辜어늘 濤累疏請誅之하야 以爲不殺이면 必爲國患이라하고
漢隱帝之世에 濤亦上疏하야 請解先帝兵權하니 夫國家安危未形而能見之하니 眞宰相器也라 臣以是薦之니이다
世宗曰 卿言甚善且至公이라 然如濤者는 終不可置之中書라하니 蓋濤喜恢諧하야 不修邊幅하고 與弟澣俱以文學著名하야 雖甚友愛而多謔浪하야 無長幼體라 世宗以是薄之러라
세종이
추밀사樞密使 를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자 논의하는 자들이 위인포는
과거科擧를 거쳐 등용된 인물이 아니므로 재상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세종이 이르기를, “예로부터
문무文武의
재략才略이 있는 자를 임용하여
보좌輔佐로 삼았으니, 어찌 모두 과거를 거쳤겠는가.” 하였다.
또 일찍이
병부상서兵部尙書 에게
대신大臣으로서 재상이 될 만한 사람을 물었다. 장소가
를 천거하니 세종이 깜짝 놀라면서 이르기를, “이도는 경박하여 대신의 풍도가 없는 사람인데 짐이 재상감을 묻자 경이 맨 먼저 이 사람을 천거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장소가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책망하신 것은 그 사람의 작은 행실이고, 신이 천거한 것은 그 사람의 큰 절의입니다. 옛날에
후진後晉 고조高祖 때에
이 죄 없는 사람을 학살하자 이도가 여러 차례 상소하여 죽이라고 청하면서 ‘그를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의 후환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후한後漢 은제隱帝 때에도 이도가 상소하여
의
병권兵權을 해제하라고 청하였습니다. 국가의 안위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능히 예견하였으니 참으로 재상이 될 만한 그릇입니다. 신이 이 때문에 천거한 것입니다.” 하였다.
세종이 이르기를, “경의 말은 매우 좋고 지극히 공변된 말이다. 그러나 이도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중서성中書省에 둘 수 없다.” 하였으니, 이는 이도가 해학을 좋아하여 몸가짐을 소홀히 하고, 아우 이한李瀚과 모두 문학文學으로 저명하여 매우 우애가 있었으나 희학하고 방탕한 일은 많고 장유長幼의 법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이 이 때문에 그를 경박한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세종은 재위 기간은 7년이고, 향년은 39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