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元文明二殿災하니 下詔求直言하고 因謂宰相曰 朕訪求讜直하야 以規己失하노라 昔禹拜昌言하니 世稱其明하나니 今之諫者 苟能切中時病이면 朕豈惜夏禹之拜乎아
且爲君之道 要在廣聞外事하야 分別善惡이라 朕御天下하야 兢兢業業이 行將十年이라 每念封疆萬里요 深居九重하야 人情未能盡達하니 若全不采聽이면 則官吏能否와 生民利病을 何從而知리오
時草澤有上書言時政者어늘 引對에 其詞狂悖호되 帝不之罪하고 慰諭而遣之하고
翌日謂宰相曰 前代帝王이 多以尊極自居하야 凜然顔色이라 左右無敢輒進一言하나니 朕每與卿等款曲하야 商確時事하니 蓋欲通上下之情하야 無有所隱이라 卿等直道而行하야 杜絶請託하고 勿以衆口鑠金爲慮하라 比來中外議朝廷政理爲何如오
宋琪曰 陛下勞心致治하시니 遠邇無間言이니이다 帝曰 雖妄言如昨草澤上書者라도 朕亦未嘗加譴하노라 琪曰 狂瞽之人은 當置嚴辟이니 但芻蕘不棄하야 以開言路 上聖之德也로소이다
他日에 帝謂戶部使李惟淸曰 朕讀漢書賈誼傳하야 夜分不知其倦하니 誼當漢文時하야 天下治平호되 指論時事를 尤爲激切하야 至云長太息堪慟哭者는 蓋欲感動人主하야 不避觸鱗하니 眞忠臣明國體者也라 今廷臣에 有似此人者否아
惟淸曰 陛下登位以來로 親選貢士하시니 所謂俊彦盈庭者矣라 若言事必理면 少賜奬擢하시고 苟不閑忌諱라도 亦望含容하시면 卽賈誼之流 自然復出하리이다
건원전乾元殿과
문명전文明殿이 불에 타자 조서를 내려
직언直言을 구하고, 이로 인하여 재상에게 이르기를, “짐이 직언을 구하여 나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옛날에
세상에서 그 현명함을 칭송하였다. 지금 간언하는 자가 만약 현재의 병폐를 정확히 지적한다면 짐이 어찌
하夏나라 우임금이 절했던 일을 아끼겠는가.
그리고 임금 노릇 하는 도리는 외부의 일을 널리 들어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짐이 천하를 다스리며 삼가고 두려워한 지가 10년이 되어 간다. 국경은 1만 리 밖에 있고 몸은 깊은 구중궁궐에 있어서 백성들의 실정을 모두 알지 못할까 매번 염려한다. 만약 간언하는 말을 모두 채집하여 듣지 않으면 관리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와 백성들의 이해利害를 어떻게 알겠는가.” 하였다.
이때에 초택草澤에서 상서上書하여 시정時政을 말하는 자가 있었는데 태종이 인대引對할 때 그 말이 광망하고 패역스러웠으나 태종이 죄를 주지 않고 관대하게 일깨워 보내었다.
다음 날 재상에게 이르기를, “전대의 제왕이 대부분
지존至尊을 자처하여 얼굴빛을 근엄하게 하였기 때문에 좌우 신하들이 감히 한 마디 말도 올리지 못했다. 짐이 매번 경들과 진솔하게 얘기하여
시사時事를 상의하였으니, 이는 상하간의 정을 통해서 숨기는 것이 없게 하려고 해서이다. 경들은 바른 도리를 행하여 청탁을 두절하고
근래에 중외에서 조정의 정치가 어떻다고 하던가?” 하였다.
송기宋琪가 아뢰기를, “폐하께서 훌륭한 정치를 하려고 노심초사하시니 원근에서 트집잡는 말이 없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이르기를, “어제 초택의 상서처럼 망령된 말이라도 짐은 꾸짖은 적이 없다.” 하니, 송기가 아뢰기를, “광망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다만
언로를 여는 것은
상성上聖의
덕德입니다.” 하였다.
훗날 태종이
호부사戶部使 에게 이르기를, “짐이 ≪
한서漢書≫ 〈
가의전賈誼傳〉을 읽다가 한밤중이 되도록 피곤한 줄을 몰랐다. 가의는
한漢 문제文帝 때를 당하여 천하가
평치平治되었는데도
시사時事를 가리켜 논하기를 더욱 격렬하게 하여 심지어 길게 한숨 쉴 만한 것과 통곡할 만한 것이 있다고까지 하였으니, 이는 임금을 감동시키고자 정면으로 직간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으니, 참된 충신으로 나라의 근본에 밝은 자이다. 지금 조정의 신하 중에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였다.
이유청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등극하신 이래로
공사貢士를 친히 선발하셨으니, 이른바 뛰어난 인재가 조정에 가득하다고 할 것입니다. 만약 일을 말한 것이 반드시 이치에 맞으면 조금 장려하여 발탁하시고,
기휘忌諱를 꺼리지 않고 말하더라도 용납해주신다면 가의 같은 자들이 자연히 다시 나올 것입니다.” 하였다.
인의용직引衣容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