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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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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32
○嘗謂宰臣曰 今之在官者 同僚所見 事雖當理 必以爲非하야 意謂從之則恐人謂政非己出이라하니 如此者多 朕甚不取
又曰 今在下僚 豈無人材리오마는 但在上者不能汲引하니 惡其才勝己耳 昔狄仁傑起自下僚하야 力扶唐祚하야 使旣危而安하야 延數百年之永하니 仁傑雖賢이나 非婁師德이면 何以自進乎


27-1-32
일찍이 재신宰臣들에게 이르기를, “지금 직임에 있는 관원들은 동료의 견해에 대하여 일이 비록 도리에 맞더라도 반드시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 생각하기를, 동료의 견해를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정사政事가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이 많은 것은 짐이 절대 용인할 수 없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지금 하급 관료들 가운데 어찌 인재가 없겠는가. 다만 고위 관료들이 기꺼이 발탁하여 등용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그 사람의 재주가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옛날 은 하급 관료에서 발탁되어 나라의 국조國祚를 힘써 도와 이미 위태로워진 국운을 안정시켜 수백 년 동안 번영을 이어가게 하였다. 적인걸이 비록 어질어도 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스스로 나아갈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역주
역주1 狄仁傑 : 630~700. 唐나라의 문신으로, 高宗 때에 大理丞, 侍御史, 度支郞中 등을 역임하며 강직하고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아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 고종이 죽고 則天武后가 정권을 장악하여 국호를 周로 바꾸었을 때 발탁되어 寧州刺史, 江南巡撫使, 豫州刺史, 地部侍郞을 역임하고, 同鳳閣鸞臺平章事를 거쳐 재상이 되었다. 측천무후가 조카인 武承嗣를 태자로 세우려고 할 때 武后를 설득하여 中宗을 태자로 세우게 함으로써 唐 왕조의 부활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로도 수많은 인재들을 천거하여 唐나라의 중흥에 크게 기여하였다.(≪新唐書≫ 권115 〈狄仁傑列傳〉)
역주2 婁師德 : 唐代 高宗과 則天武后 때의 대신으로, 자는 宗仁, 시호는 貞이다. 30년 동안 將相으로 있으며 변방 일을 도맡아보았는데, 그는 성품이 침착하고 후덕하였으며 포용력이 있어서 狄仁傑을 추천하여 명재상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적인걸은 이를 알지 못하고 그를 경시하여 여러 번 비판하였는데, 뒤에 그의 천거로 인해 등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탄하기를, “婁公의 거룩한 덕을 나는 측량할 수 없다.” 하였다고 한다.(≪舊唐書≫ 권93 〈婁師德列傳〉)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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