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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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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 帝遣吳漢하야 率耿弇景丹等十三將軍하고 追尤來等한대 斬首萬三千級하고 遂窮追至浚靡而還이라
賊散入遼西遼東이라가 爲烏桓貃人所鈔擊略盡이라
都護將軍賈復與五校戰於眞定이라가 復傷創甚하니 帝大驚曰 我所以不令賈復別將者 爲其輕敵也어늘 果然失吾名將이라
聞其婦有孕이라하니 生女邪 我子娶之하고 生男邪 我女嫁之하야 不令其憂妻子也라한대 復病尋愈하야 追及帝於薊하니 相見甚驩이라


10-1-2 여름에 광무제가 을 파견하여 을 거느리고 등을 추격하게 하였는데, 1만 3천여 명의 수급을 베고 마침내 끝까지 추격하여 준미浚靡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이에 적들은 흩어져 요서遼西요동遼東으로 들어갔다가 맥인貊人에게 습격당하여 모두 사로잡혔다.
도호장군都護將軍 가복賈復(가복)이 진정현眞定縣에서 와 싸우다가 가복이 상처를 심하게 입자, 소왕蕭王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가 가복으로 하여금 별도로 군대를 거느리게 하지 않은 까닭은 그가 적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인데, 과연 나의 명장名將을 잃을 뻔하였구나.
내 듣건대 그의 부인이 임신했다고 하니, 딸을 낳으면 나의 아들을 장가보내고 아들을 낳으면 나의 딸을 시집보내어 그가 처자妻子를 걱정하지 않게 하겠다.” 하였는데, 가복의 병이 얼마 후 나아서 광무제를 뒤따라 땅에 이르니 서로 만나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역주
역주1 吳漢 : 광무제의 장군으로 역적 公孫述과 여덟 번 싸워 여덟 번 모두 승리하여 공손술을 멸망시켰고, 또 匈奴를 격파하여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담력이 매우 강하여 아무리 급한 때에도 항상 의기가 자약하였으며, 늘 兵器를 수선하고, 군사를 조련하는 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後漢書≫ 권18 〈吳漢列傳〉)
역주2 耿弇(경감)과……장군 : 광무제가 新나라를 멸망시키고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 할 때 그를 도와 漢나라를 재건한 장군 28명이 있는데, 그 가운데 13명을 말한다. 당시 광무제의 장군 28명은 鄧禹․馬成․吳漢․王梁․賈復․陳俊․耿弇․杜茂․寇恂․傅俊․岑彭․堅鐔․馮異․王霸․朱祐․任光․祭遵․李忠․景丹․萬脩․蓋延(합연)․邳彤․銚期․劉植․耿純․臧宮․馬武․劉隆인데, 광무제의 아들 明帝가 이들을 中興功臣이라 하여 南宮의 雲臺에 그려 넣었기 때문에 ‘雲臺二十八將’이라고도 한다.(≪後漢書≫ 권22 〈朱景王杜馬劉傅堅馬列傳〉)
역주3 尤來 : 更始 초기에 鐵脛, 大槍, 五幡 등과 함께 일어난 賊의 명칭으로, 광무제 원년에 북쪽 元氏縣에서 이들을 공격하여 北平에서 연달아 격파하였다.(≪通鑑節要≫ 권16 〈東漢紀〉 世祖光武皇帝上 建武 元年)
역주4 烏桓 : 부족의 이름으로, 烏丸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본래 東胡의 별종으로, 漢나라 때 흉노에게 멸망당하였는데, 나머지 종족들이 烏桓山으로 도망쳐 들어가 살면서 산의 이름을 종족명으로 삼았다.
역주5 五校 : 西漢末 高扈가 거느리던 農民 起義軍의 이름이다.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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