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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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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군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八年冬十二月 帝拜班超爲將兵長史하고 以徐幹爲軍司馬하고 別遣衛侯李邑하야 護送烏孫使者러니 到于窴 値龜玆攻疏勒한대 恐懼不敢前하야 因上書陳西域之功不可成하고 又盛毁班超하야 擁愛妻抱愛子하고 安樂外國하야 無內顧心이라한대
超聞之하고 歎曰 身非曾參而有三至之讒하니 恐見疑於當時矣라하고 遂去其妻하니
帝知其忠하고 乃切責邑曰 超縱擁愛妻抱愛子 思歸之千餘人이니 何能盡與超同心乎리오
令邑詣超受節度하고 詔若邑任在外者어든 便留與從事하다


11-2-6 건초建初 8년(83) 겨울 12월에 장제가 장병장사將兵長史에 제수하고 서간徐幹군사마軍司馬로 삼은 다음 따로 위후衛侯 이읍李邑을 파견하여 의 사신을 호송하게 하였는데, 이읍이 우전국于窴國에 이르렀을 때 구자龜玆소륵疏勒을 공격하는 상황을 만나 두려워서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인하여 상서上書하여 아뢰기를 “서역西域전공戰功은 이룰 수 없습니다.”라 하고, 다시 반초를 매우 비방하여 “그는 애첩愛妾을 품고 자식을 끌어안은 채 나라 밖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나라 안은 돌볼 마음이 없습니다.”라 하였다.
반초가 이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내가 증삼曾參이 아닌데 이 있으니, 아마도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서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마침내 아내를 보내니,
장제가 그의 충성을 알고 이읍을 몹시 나무라기를, “반초가 설령 애첩을 품고 자식을 끌어안고 있었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병사가 천여 명인데, 그대는 어찌 반초와 마음을 함께하지 않는가?” 하였다.
그리고 이읍으로 하여금 반초에게 가서 절도節度의 지휘를 받게 한 다음 반초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만일 이읍이 외관外官보임補任할 만한 자이거든 머물러두고 함께 종사從事하도록 하라.” 하였다.


역주
역주1 班超 : 後漢 사람으로 자는 仲升이고 班固의 아우이다. 明帝 때에 지금의 西藏 지역인 西域에 사신으로 가서 鄯善과 于闐, 疏勒, 莎車 등의 나라를 服屬시키고 이들 지역을 다스리는 西域都護가 되었다.(≪後漢書≫ 권47 〈班超列傳〉)
역주2 烏孫 : 漢나라 때 西域에 있던 나라 이름으로, 지금의 新疆省 경내 溫宿縣 이북에서 伊寧縣 이남 지역이다.
역주3 세……讒言 : 참소가 여러 차례 이르게 되면 믿지 않던 사람도 끝내는 믿게 된다는 말이다. 옛날 曾子가 費 땅에 살 때에, 증자와 이름이 같은 자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어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소.”라고 하니 믿지 않고 태연히 베만 짰다. 두 번째에도 믿지 않다가, 세 번째로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증자의 어머니도 두려워서 베 짜던 북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는 고사이다.(≪戰國策≫ 〈秦策2〉)
역주4 (子)[士] : 저본에는 ‘子’로 되어 있으나, ≪後漢書≫ 권77 〈班梁列傳〉에 의거하여 ‘士’로 바로잡았다.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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