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年冬十二月에 帝拜班超爲將兵長史하고 以徐幹爲軍司馬하고 別遣衛侯李邑하야 護送烏孫使者러니 到于窴에 値龜玆攻疏勒한대 恐懼不敢前하야 因上書陳西域之功不可成하고 又盛毁班超하야 擁愛妻抱愛子하고 安樂外國하야 無內顧心이라한대
超聞之하고 歎曰 身非曾參而有三至之讒하니 恐見疑於當時矣라하고 遂去其妻하니
帝知其忠
하고 乃切責邑曰 超縱擁愛妻抱愛子
나 思歸之
千餘人
이니 何能盡與超同心乎
리오
令邑詣超受節度하고 詔若邑任在外者어든 便留與從事하다
11-2-6
건초建初 8년(83) 겨울 12월에 장제가
를
장병장사將兵長史에 제수하고
서간徐幹을
군사마軍司馬로 삼은 다음 따로
위후衛侯 이읍李邑을 파견하여
의 사신을 호송하게 하였는데, 이읍이
우전국于窴國에 이르렀을 때
구자龜玆가
소륵疏勒을 공격하는 상황을 만나 두려워서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인하여
상서上書하여 아뢰기를 “
서역西域의
전공戰功은 이룰 수 없습니다.”라 하고, 다시 반초를 매우 비방하여 “그는
애첩愛妾을 품고 자식을 끌어안은 채 나라 밖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나라 안은 돌볼 마음이 없습니다.”라 하였다.
반초가 이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내가
증삼曾參이 아닌데
이 있으니, 아마도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서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마침내 아내를 보내니,
장제가 그의 충성을 알고 이읍을 몹시 나무라기를, “반초가 설령 애첩을 품고 자식을 끌어안고 있었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병사가 천여 명인데, 그대는 어찌 반초와 마음을 함께하지 않는가?” 하였다.
그리고 이읍으로 하여금 반초에게 가서 절도節度의 지휘를 받게 한 다음 반초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만일 이읍이 외관外官에 보임補任할 만한 자이거든 머물러두고 함께 종사從事하도록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