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淮西平하니 平盧節度使李師道憂懼하야 遣使奉表하야 請使長子入侍하고 幷獻沂密海三州어늘 上許之하고 遣左常侍李遜하야 詣鄆州宣慰하니
遜至鄆하야 察師道非實誠하고 歸言於上曰 師道頑愚反覆하니 恐必須用兵이니이다
旣而師道表言軍情不聽納質割地라하니 上怒하야 決意討之하야 乃下制罪狀하고 令宣武魏博義成武寧橫海兵共討之러니
魏博義成軍送所獲鄆州牙將夏侯澄等四十七人하니 上皆釋弗誅하고 各付所獲行營驅使하야 曰 若有父母하야 欲歸者면 優給遣之하라 朕所誅者는 師道而已니라 於是賊中聞之하고 降者相繼러라
平盧都將劉悟乃夜襲師道하야 捕斬之하고 凾首以聞하니 淄靑等十二州皆平하다
上命戶部侍郞楊於陵爲淄靑宣撫使하니 自廣德以來垂六十年에 藩鎭跋扈하야 河南北三十餘州 自除官吏하고 不供貢賦러니 至是에 盡遵朝廷約束矣러라
裴度纂述蔡鄆用兵以來에 上之憂勤機略하야 因侍宴獻之하고 請內印出付史官한대 上曰 如此면 似出朕志니 非所欲也라하고 弗許하다
회서淮西가 평정되자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 이사도李師道가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표문表文을 올려서 자기의
장자長子로 하여금 입시하게 하고 아울러
기주沂州ㆍ
밀주密州ㆍ
해주海州 세 주를 바치겠다고 하니, 헌종이 허락하고
좌상시左常侍 을 보내
운주鄆州에 가서
선위宣慰하게 하였다.
이손이 운주에 가서 이사도의 말이 진실이 아님을 살피고 돌아와 헌종에게 아뢰기를, “이사도가 어리석고 변덕스러우니 반드시 군대를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얼마 뒤에 이사도가 표문을 올려 휘하 군사들이 볼모를 바치고 땅을 떼어 조정에 바치라는 명을 듣지 않는다고 하니, 헌종이 노하여 토벌하기로 작정하고 명을 내려 죄상을 선포하고 선무宣武ㆍ위박魏博ㆍ의성義成ㆍ무령武寧ㆍ횡해橫海의 군대로 하여금 함께 토벌하게 하였다.
위박과 의성의 군대가 사로잡은 운주鄆州의 아장牙將 하후징夏侯澄 등 47명을 압송해 올리니, 헌종이 모두 죽이지 않고 풀어주고서 각각 그들을 잡은 행영行營에 내려보내 잡역을 시키게 하면서 이르기를, “만약 부모가 있어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가 있거든 넉넉하게 여비를 주어 보내도록 하라. 짐이 죽이려는 자는 이사도 한 사람뿐이다.” 하였다. 이에 적도들이 그 소식을 듣고 항복하는 자가 줄을 이었다.
평로도장平盧都將 가 마침내 밤에 이사도를 습격하여 잡아서 목을 베어 머리를 함에 담아서 올려보내니
치주淄州와
청주靑州 등 12
주州가 모두 평정되었다.
헌종이
호부시랑戶部侍郞 을
치청선무사淄靑宣撫使로 삼으니
이래 60년 동안
번진藩鎭이
발호跋扈하여
하남河南과
하북河北 30여
주州가 스스로 관리를 임명하고
공부貢賦를 국가에 바치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두 조정의 법령을 따랐다.
배도가 채주蔡州와 운주鄆州에 군대를 투입하여 토벌한 이래 헌종이 근심하고 애쓰며 기략機略를 짜낸 일을 찬술하고서 헌종을 모시고 연회한 때에 올리고 대내大內에서 인출印出하여 사관史官에게 내리기를 청하자 헌종이 이르기를, “이와 같이 하면 짐의 뜻에서 나온 것과 같으니 짐이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하고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