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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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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31
○曹縣獻騶虞어늘 行在禮部尙書呂震奏騶虞上瑞 請明旦率群臣上表賀한대 上曰 百穀豐登하고 雨暘時順하야 家給人足이면 此爲上瑞 騶虞何與民事리오 不必賀니라
震固請한대 上曰 大臣之道 當務爲國爲民이니 爾能效李沆爲人則善矣니라 震退어늘 上顧侍臣曰 震可謂不學無術者矣로다


32-1-31
조현曹縣추우騶虞를 바치자 여진呂震이 아뢰기를, “추우는 가장 큰 상서祥瑞이니 내일 아침에 군신群臣을 거느리고 표문을 올려 하례하겠습니다.” 하니, 태종이 이르기를, “백곡百穀이 풍년이 들고 일기가 순조로워 집집마나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면 이것이 가장 큰 상서이니, 추우가 백성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례할 필요 없다.” 하였다.
여진이 강하게 요청하자 태종이 이르기를, “대신의 도리는 의당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해 힘써야 하니, 그대가 의 됨됨이를 본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였다. 여진이 물러나자 태종이 시신侍臣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여진은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行在禮部尙書 : 成祖(太宗)가 南京을 평정하고 즉위하고서 자신의 근거지였던 北京에 行在六部를 두어 六部와 같은 제도를 두었다. 그러다가 永樂 18년(1420)에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行在를 칭하지 않았다. 洪熙 원년(1425)에 다시 북경의 육부에 ‘行在’를 가했다가 正統 6년(1441)에 정식으로 行在를 없앴다.
역주2 李沆 : 947~1004. 宋나라 太宗과 眞宗 때 사람으로 자는 太初이다. 벼슬은 尙書右僕射에 이르렀고, 太尉․中書令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靖이다.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고 세상 풍속을 진정시켰으며, 先見之明이 있는 명재상으로 일컬어진다.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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