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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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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42
○翰林學士楊溥密疏言事한대 上嘉納之하고 御札奬諭之曰
覽卿所奏하니 爲國家之計 誠合朕心이라 但望卿始終如一하야 知無不言하야 相朕致治하야 以承天休하라 感卿忠懇하고 特用酬報하야 今賜卿綵幣一雙 鈔一千貫하니 卿其領之하라하다


33-1-42
한림학사翰林學士 가 비밀리에 소장疏狀을 올려 정사에 대해 말하였는데, 인종이 가납嘉納하고 어찰御札을 내려 장려하며 유시하였다.
“경이 상주上奏한 말을 살펴보니 국가를 위한 계책이 참으로 짐의 마음에 합치한다. 다만 바라건대, 경은 시종일관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음이 없어서 짐을 도와 치세治世를 이루어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받들도록 하라. 경의 충간忠懇에 감격하고 특별히 수보酬報은전恩典을 베풀어 지금 경에게 채패綵幣 1 1000을 하사하니, 경은 사양하지 말고 받도록 하라.”


역주
역주1 楊溥 : 1372~1446. 明나라의 名臣으로, 자는 弘濟이다. 惠帝 때 진사에 급제하여 편수에 올랐으며, 成祖 때 황태자를 모시면서 洗馬가 되었다. 성조가 태자로 하여금 監國하게 할 때 정사를 담당하였는데, 태자가 성조에게 영접사를 늦게 보내는 바람에 성조의 노여움을 사서 錦衣獄에 구금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감옥에서 經史諸子를 반복하여 독파하였다. 태자였던 仁宗이 즉위하자 감옥에서 풀려나 翰林學士 등에 기용되었으며, 宣宗이 즉위하자 내각으로 불려 들어가 楊士奇 등과 함께 機務를 관장하였다. 이후 예부상서, 무영전대학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양사기․楊榮과 함께 ‘三楊’으로 칭송되었는데, 당시 양사기는 學行이 있고 양영은 才識을 갖추었으며 양부는 雅操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시호는 文正이다.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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