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康은 啓之子也라 居喪不哀하고 農政不修하며 棄稷不務하야 以逸豫로 滅厥德한대 群臣이 咸貳커늘 乃盤遊無度하야 畋于有洛之表하야 十旬을 弗反하니라 有窮后羿가 因民弗忍하야 距于河하니라
厥弟五人이 御其母以從하야 徯于洛之汭하더니 五子咸怨하야 述大禹之戒하야 以作歌하니라
其一曰 皇祖有訓하시니 民可近이언정 不可下니라 民惟邦本이니 本固라사 邦寧하나니라 予視天下컨대 愚夫愚婦도 一能勝予라하나니 一人이 三失이어니 怨豈在明이리오 不見에 是圖니라
予臨兆民호대 凜乎若朽索之御六馬하노니 爲人上者는 柰何不敬고하다
其二曰 訓에 有之하시니 內作色荒이어나 外作禽荒이어나 甘酒嗜音이어나 峻宇彫牆이어나 有一于此하면 未或不亡이니라하다
其三曰 惟彼陶唐으로 有此冀方하시니 今失厥道하야 亂其紀綱하야 乃厎滅亡이로다하다
其四曰 明明我祖
는 萬邦之君
이시니 有典有則
하야 貽厥子孫
이라 關石和
이 王府
에 則有
하니 荒墜厥緖
하야 覆宗絶嗣
로다하다
其五曰 嗚呼曷歸오 予懷之悲여 萬姓이 仇予하나니 予將疇依요 欝陶乎라 予心이여 顔厚有忸怩호라 弗愼厥德이어니 雖悔런들 可追아하다
太康이 旣失國不得歸할새 后羿乃立太康之弟仲康而專其政하니 夏道遂微하니라
태강太康은
의 아들이다. 상을 치르면서 슬퍼하지 않고
농정農政을 정비하지 않으며
직稷의 임무를 버리고 힘쓰지 않아서 편안히 즐기며 그
덕德이 사라지게 하자 신하들이 모두 배반하였는데, 그런데도 오히려 즐기고 놀기를 한없이 하여
낙수洛水의 밖으로 사냥 가서 100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유궁有窮의 임금인
예羿가 백성들이 참아내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수河水에서 막았다.
태강의 아우 다섯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고 따라가서 낙수洛水의 물가에서 기다렸는데, 다섯 사람이 모두 원망하여 우禹임금의 경계警戒를 기술하여 노래를 지었다.
그 첫 번째 노래에 이르기를, “황조皇祖께서 교훈을 남기셨으니, ‘백성은 가까이할지언정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하여야 나라가 튼튼하다.’ 하셨다. 내가 천하天下를 보건대 미련한 지아비와 부인들도 한 사람이 능히 우리를 이긴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세 가지 잘못을 하였으니, 원망이 어찌 밝은 데에 있겠는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도모하여야 한다.
내
조민兆民들을 대하되 무섭기가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말을 어거하는 것과 같으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가 어찌하여 공경하지 않는가.” 하였다.
유전실위遊畋失位
그 두 번째 노래에 이르기를, “교훈敎訓에 있으니, 안으로 여색에 빠지거나 밖으로 사냥만 좋아하거나 술을 달게 여기고 음악을 좋아하거나 집을 높이 짓고 담장을 조각하거나 하여 이 중에 한 가지가 있으면 혹 망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였다.
그 세 번째 노래에 이르기를, “저 도당陶唐으로부터 이 기주冀州 지방을 소유하셨는데, 이제 그 도道를 잃어 기강紀綱을 문란하게 해서 끝내 멸망함에 이르렀다.” 하였다.
그 네 번째 노래에 이르기를, “밝고 밝은 우리 선조先祖는 만방萬邦의 군주君主이시니, 전장典章과 법칙法則을 마련하시어 자손들에게 남겨주셨다. 어디서나 통하는 석石과 누구에게나 공평한 균鈞이 왕부王府에 있는데, 그 전통을 폐하고 실추시켜 종족宗族을 전복시키고 후사後祀를 끊는구나.” 하였다.
그 다섯 번째 노래에 이르기를, “아! 어디로 돌아갈까. 내 마음의 서글픔이여! 만백성이 나를 원수로 여기니 내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슬프다. 내 심정이여!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운 마음이 있노라. 그 덕德을 삼가지 않았으니, 후회한들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하였다.
태강太康이 이미 나라를 잃어 돌아올 수 없어졌을 때 유궁후有窮后 예羿가 이에 태강太康의 아우 중강仲康을 세워 정사政事를 전단專斷하니 하夏나라의 도道가 마침내 쇠미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