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元元年夏에 京師에 醴泉涌出한대 飮之者固疾皆愈라 又有赤草生於水崖하고 郡國頻上甘露하니
群臣奏言 地祇靈應而朱草萌生이라 孝宣帝每有嘉瑞에 輒以改元하야 神爵五鳳甘露 黃龍을 列爲年紀하니 蓋以感致神祇하야 表彰德信이라 是以로 化致昇平하야 稱爲中興이라
今天下淸寧하야 靈物仍降이어늘 陛下情存損挹하사 推而不居하시니 豈可使祥符顯慶으로 沒而無聞이리오 宜令太史撰集하야 以傳來世라한대
帝不納하고 常自謙無德하야 每郡國所上을 輒抑而不當이라 故史官罕得記焉이러라
帝每
視朝
하고 日昃乃罷
하고 數引公卿郞將
하야 講論經理
하야 夜分乃寢
하니 皇太子見帝勤勞不怠
하고 乘間諫曰 陛下有禹湯之明而失黃老養性之福
하시니 願頤愛精神
하야 優游自寧
하소서 帝曰 我自樂此
하니 不爲疲也
라하더라
雖以征伐濟大業이나 及天下旣定에 乃退功臣而進文吏하야 明愼政體하고 總攬權綱하야 量時度力하야 擧無過事라 故能恢復前烈하고 身致太平하다
10-1-30
중원中元 원년(56) 여름에
경사京師에
이 솟아 나왔는데, 이 물을 마신 사람은
고질痼疾이 모두 나았다. 또
가 물가에서 자라고
군국郡國에서
감로수甘露水가 나온다는 보고를 자주 올리니,
신하들이
상주上奏하기를 “토지신이 신령스럽게 감응하여
주초朱草가 싹터 나왔습니다.
는 아름다운 상서가 있을 때마다
개원改元하여
신작神爵(B.C.61~B.C.58),
오봉五鳳(B.C.57~B.C.54),
감로甘露(B.C.53~B.C.50),
황룡黃龍(B.C.49)을 나열하여
연기年紀로 삼았으니, 이는 천지신명이 감응하여 이르게 함으로써
성덕聖德과
위신威信을 드러내 밝힌 것입니다. 이 때문에 태평성대의 교화를 이루어
중흥中興을 칭송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천하가 맑고 편안하여 영물靈物이 이에 내려왔는데 폐하께서는 겸허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을 가지시어 사양하며 자처하지 않으시니, 어찌 상서祥瑞의 부절符節과 드러난 길조가 민몰泯沒되어 알려지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태사太史로 하여금 찬집撰集하여 내세來世에 전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광무제는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스스로 덕德이 없다고 겸손해하면서 매번 군국郡國에서 올린 상서로운 일을 번번이 억제하고 자신에게 해당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이 드물었다.
광무제는 매일 아침 일찍 조회를 보고 해가 기울어야 비로소 파하였으며, 자주 공경公卿과 낭郎․장將을 인견引見하여 경전經傳의 의리를 강론해서 밤이 깊어서야 비로소 잠을 자니, 황태자가 근로하여 게을리하지 않는 광무제를 보고는 틈을 타서 간諫하기를 “폐하께서는 우왕禹王과 탕왕湯王의 총명함이 있으신데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양성養性하는 복福을 잃으시니, 원컨대 정신을 기르고 아껴서 한가로이 지내며 스스로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이에 광무제가 이르기를, “나는 본래 이것을 즐거워하니, 피곤하지 않다.” 하였다.
광무제는 비록 정벌征伐로 대업大業을 이루었지만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을 때는 공신功臣을 물리치고 문관文官을 등용해서 정사政事의 체통을 밝게 알고 삼가며, 조정朝廷의 대권을 총괄하고 때를 헤아리고 힘을 헤아려서 조처함에 지나친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전대前代의 공렬功烈을 회복하여 몸소 태평太平을 이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