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四年夏四月에 窮治楚獄할새 顔忠王平이 辭引隧鄕侯耿建等이어늘 建等은 辭未嘗與忠平相見하니 是時에 帝怒甚이라
吏皆惶恐하야 諸所連及을 率一切陷入하고 無敢以情恕者라
侍御史寒朗이 心傷其寃하야 試以建等物色으로 獨問忠平하니 而二人이 錯愕不能對어늘
朗知其詐하고 乃上言호되 建等無姦이어늘 專爲忠平所誣하니 疑天下無辜가 類多如此하노이다
帝曰 卽如是면 忠平이 何故引之오 對曰 忠平自知所犯不道라 故多虛引하야 冀以自明이니이다
帝曰 卽如是면 何不早奏오 對曰 臣恐海內別有發其姦者라
帝曰 吏持兩端하니 促提下捶之하라 左右引去어늘 朗曰 願一言而死하리이다
帝曰 誰與共爲章고 對曰 臣獨作之호이다 帝曰 何不與三府議오 對曰 臣自知當族滅이라 不敢多汙染人호이다
帝曰 何故族滅고 對曰 臣考事一年에 不能窮盡姦狀하고 反爲罪人訟寃이라 故知當族滅이나 然臣所以言者는 誠冀陛下의 一覺悟而已라
臣見考囚在獄者를 咸共言妖惡大故는 臣子의 所宜同疾이니 今出之不如入之니 可無後責이라 是以로 考一連十하고 考十連百하고
又公卿朝會에 陛下問以得失이면 皆長跪言舊制에 大罪는 禍及九族이어늘 陛下大恩이 裁止於身하니 天下幸甚이라하고 及其歸舍에 口雖不言이나 而仰屋竊歎하야 莫不知其多寃호되 無敢牾陛下言者라 臣今所陳이 誠死無悔로이다
帝意解하사 詔遣朗出하고 後二日에 車駕自幸洛陽獄하사 錄囚徒하야 理出千餘人하니 時에 天旱이러니 卽大雨하다
11-1-12
영평永平 14년(71) 여름 4월에
에 대해 철저히 다스렸는데, 당시
안충顔忠과
왕평王平이
공초供招에
수향후隧鄕侯 경건耿建 등等을 끌어들이자, 경건 등은 공초에 안충이나 왕평과는 만난 적이 없다고 하니, 이때 명제가 매우 노여워하였다.
이에 관리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연좌된 자들을 모두 죄에 몰아넣고 감히 정상을 참작하여 용서해주는 일이 없었다.
이때
시어사侍御史 이 마음속으로 그들의 억울함을 슬퍼하여, 홀로 안충과 왕평을 심문하되, 시험 삼아 경건 등의 용모를 말해보라고 하니, 두 사람이 놀라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에 한랑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상언上言하기를, “경건 등은 간사한 마음이 없었는데 전적으로 안충과 왕평의 무고誣告를 받았으니, 아마도 천하의 무고無辜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와 같을 듯합니다.” 하였다.
명제가 이르기를, “그대의 말과 같다면 안충과 왕평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끌어들인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안충과 왕평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거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죄가 없다고 밝혀지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하였다.
명제가 이르기를, “그대의 말과 같다면 어찌 일찍 아뢰지 않았단 말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천하에 그들의 간사함을 고발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였다.
명제가 이르기를, “관리들이 그간의 전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니, 속히 잡아 하옥시킨 다음 문초하도록 하라.” 하니, 좌우左右의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려 하였는데, 한랑이 말하기를, “원컨대, 한 말씀 올리고 죽고자 합니다.” 하였다.
명제가 이르기를, “누구와 함께 글을 작성하려 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홀로 작성할 것입니다.” 하였다. 명제가 이르기를, “어찌
과 함께 의논하지 않는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이 일이
멸족滅族의 죄에 해당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다른 사람을 많이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하였다.
명제가 이르기를, “무엇 때문에 멸족에 해당한다고 말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일 년 동안 일을 조사했지만 간악한 정상을 다 밝혀내지 못하고 도리어 죄인들을 대신해 하소연하고 있으니 멸족滅族의 죄에 해당하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신이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실로 폐하께서 한 번 각성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신이 보건대, 옥에 갇혀 조사받고 있는 자들에 대해 모두가 ‘요사스런 악행을 행하고 큰 과오를 저질렀으니, 신하들이 모두 함께 미워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석방하는 것보다 하옥하는 것이 좋으니, 그래야 후일에 책임이 없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을 조사하면 열 사람이 연루되고 열 사람을 조사하면 백 사람이 연루되었습니다.
또 공경公卿들이 조회할 때 폐하께서 그 득실에 대해 하문하면 모두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옛 제도에 대죄大罪는 화禍가 구족九族에까지 미쳤는데, 폐하께서 크게 은혜를 내리시어 죄가 그 자신의 몸에서 그치게 하셨으니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다행이라 여깁니다.’라 해놓고, 집으로 돌아가서 입으로는 말하지 못했지만 지붕을 쳐다보며 가만히 탄식하여, 그들에게 원통함이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면서도 감히 폐하의 하교를 거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신은 지금 이런 말을 아뢰고 죽어도 후회가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명제의 노여움이 풀려서 한랑을 내보낼 것을 명하고, 이틀 후에 거가車駕가 직접 낙양洛陽의 옥獄에 행차하여 죄수들을 심리審理한 다음 천여 명을 출옥시키니, 이때 날이 가물었다가 바로 큰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