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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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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13
○四月 有建言請設諫官者어늘
上曰 祖宗定制不可改 但朕有過失이면 令中外大小之臣皆得諫하야 而納之不爲迕 豈不所得者多歟아하고
因謂侍臣曰 三代以下人君 唐太宗善納諫하고 當時之臣 若魏徵王珪亦善諫이라 故有貞觀之治
宋太祖嘗曰 唐太宗受人諫疏 常自引咎하야 不以爲恥로대 不若己不爲非하야 使人無可諫이라하니 二者孰是오하니 侍臣對曰 宋太祖所言爲優라한대
上曰 宋太祖固是務本之論이나 然人所行豈能皆是리오
若禹聞善言則拜하고 湯從諫弗咈하야 改過不吝하니 禹湯猶取善於人이어든 況其下者乎 朕以爲君人者 當以太宗爲法이라하다


35-1-13
4월에 건언建言하여 간관諫官을 설치하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선종이 이르기를, “조종祖宗께서 정해놓은 제도를 고칠 수는 없다. 다만 짐에게 과실이 있으면 중외中外대소大小 신료臣僚들로 하여금 모두 간언을 할 수 있게 해서 어기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니, 그렇게 하면 어찌 얻는 것이 많지 않겠는가?” 하고,
인하여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삼대三代 이후의 인군人君 가운데는 태종太宗이 간언을 잘 받아들였고 당시의 신하들 가운데는 같은 사람들이 또한 간언을 잘하였으니, 이 때문에 정관貞觀치세治世를 이루었다.
태조太祖는 일찍이 이르기를, ‘당 태종은 사람들의 간언하는 상소上疏를 받을 때마다 늘 자신의 허물을 인용하며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간언할 것이 없게 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옳은가?” 하니, 시신이 대답하기를, “송 태조가 한 말이 좋습니다.” 하였다.
이에 선종이 이르기를, “송 태조의 말이 실로 근본에 힘쓰는 논의이긴 하지만, 사람이 행하는 바가 어찌 모두 옳을 수 있겠는가?
예컨대, 임금은 한 말을 들으면 절하였고 임금은 간언을 따라서 어기지 않아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았으니, 우임금과 탕임금도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한 점을 취하였는데, 더구나 이분들보다 자질이 모자라는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짐의 생각에는, 군주가 된 사람은 마땅히 태종을 본받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하였다.


역주
역주1 魏徵 : 580~643. 산동성 曲城 사람으로 자는 玄成, 시호는 文貞이다. 隋나라 말 혼란기에 李密의 군대에 참가하였으나 곧 唐 高祖에게 귀순하여 고조의 장자 李建成의 유력한 측근이 되었다. 황태자 건성이 아우 李世民(태종)과의 경쟁에서 패하였으나, 태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諫議大夫 등의 요직을 역임한 후 宰相에 중용되었다. 특히 굽힐 줄 모르는 直諫으로 유명하며, 北周․隋 등의 正史 편찬 사업과 ≪群書治要≫ 등의 편찬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그가 죽자 태종은 거울 하나를 잃었다고 탄식하였다.
역주2 王珪 : 571~639. 자는 叔玠이며 대대로 환관 가문 출신이다. 魏徵과 함께 태종을 섬겼는데, 태종의 諫官이 되어 간쟁을 잘하였으므로 直臣으로 유명하였다.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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