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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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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21
○上罷朝하고 御文華殿한대 學士楊溥等侍
語及治民事할새 上曰 民之休戚 係乎庶官之賢否하니 何術可盡得其人고하니 溥對曰 嚴薦擧하고 精考課 不患不得이라한대
上曰 欲得賢才 當厚敎養之法이니 敎養有道 人才自出이라 若但責效於薦擧考課之間이면 蓋求十一於千百也
漢董仲舒言 素不養士而欲求賢 譬猶不琢玉而求文采라하니 此誠知本之論이라 於今 但當崇學重敎니라하다


35-1-21
선종이 조회를 마치고 문화전文華殿에 행차하였는데, 학사學士 양부楊溥 등이 시종侍從하였다.
이야기하다가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대해 언급하였을 때 선종이 이르기를, “백성들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은 백관이 어진지 그렇지 못한지에 달려 있으니, 백관에 모두 적합한 인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니, 양부가 대답하기를, “천거薦擧를 엄중하게 하고 고과考課를 정미롭게 하면 얻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선종이 이르기를 “어진 인재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가르치고 양육하는 방법을 두터이 해야 할 것이니, 가르치고 양육하는 데에 도리가 있으면 인재人才는 절로 나올 것이다. 만일 다만 천거薦擧하고 고과考課하는 사이에서 실효를 거두려고만 한다면 대개 천백 명 가운데 열 명이나 한 명밖에 구하지 못할 것이다.
나라 가 말하기를, 하였으니, 이 말이 참으로 근본을 아는 논의이다. 지금은 다만 마땅히 학문을 높이고 교육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董仲舒 : B.C. 197〜B.C. 104. 廣川 사람이다. 前漢 때의 경학가로, 景帝 때 박사가 되었으며 武帝 때에는 江都相과 膠西相을 역임하였다. 〈賢良對策〉을 올려 유학을 존중하고 백가 사상을 배척할 것을 주장하여 경학의 지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春秋繁露≫ 등이 있다.
역주2 평소……같다 : 董仲舒가 世宗에게 올린 策問에 “평소 선비를 기르지 않고 현자를 구하고자 하면, 이는 비유하건대 옥을 쪼아 다듬지 않고 文采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선비를 기르는 데 있어 太學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니, 태학은 어진 선비의 關門이고 교화의 근본입니다. 원컨대 태학을 일으키고 현명한 스승을 배치하여, 천하의 선비를 길러서 자주 상고하고 물어 그 재능을 다하게 하시면 英材와 俊傑들을 마땅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夫不素養士而欲求賢 譬猶不琢玉而求文采也 故養士 莫大虖太學 太學者 賢士之所關也 敎化之本原也 願興太學置明師 以養天下之士 數考問以盡其材 則英俊 宜可得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資治通鑑≫ 권17 〈漢紀9 世宗孝武皇帝上之上〉)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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