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二年에 建州刺史于延陵入辭하니 上曰 卿到彼에 爲政善惡을 朕皆知之하니 勿謂其遠하라 此階前은 則萬里也니 卿知之乎아 延陵悸慴失緖어늘 上撫而遣之러니 到官에 竟以不職貶復州司馬하다
令狐綯擬李遠杭州刺史한대 上曰 吾聞遠詩云 長日惟消一局棊라하니 安能理人이리오
綯曰 詩人託此爲高興耳라 未必實然이니이다 上曰 且令往하라 試觀之하리라
上詔刺史毋得外徙하고 必令至京師하야 面察其能否하고 然後除之러니 令狐綯嘗徙其故人하야 爲隣州刺史하고 便道之官하니 上見其謝表하고 以問綯한대 對曰 以其道近하야 省送迎耳니이다
上曰 朕以刺史多非其人하야 爲百姓害라 故欲一一見之하야 訪問其所施設하고 知其優劣하야 以行黜陟이어늘 而詔命旣行에 直廢格不用하니 宰相可謂有權이로다 時方寒이러니 綯汗透重裘러라
上臨朝에 接對群臣如賓客하니 雖左右近習이라도 未嘗見其有惰容하고 每宰相奏事에 旁無一人立者나 威嚴不可仰視라
奏事畢에 忽怡然曰 可以閑語矣라하고 因問閭閻細事하며 或談宮中遊宴하야 無所不至러니 一刻許에 復整容曰 卿輩善爲之하라 朕常恐卿輩負朕하야 後日不復得再相見이라하고 乃起入宮하더라
令狐綯謂人曰 吾十年秉政하야 最承恩遇나 然每造延英奏事에 未嘗不汗霑衣也라하더라
대중大中 12년(858)에 건주자사建州刺史 우연릉于延陵이 들어와 하직인사를 하자 선종이 이르기를, “경이 그곳에 가서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짐이 모두 알 수 있으니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 섬돌 앞이 곧 만 리이니 경은 아는가?” 하니, 우연릉이 두려워 어쩔 줄 모르자 선종이 다독여 보냈다. 우연릉이 부임했는데 마침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복주사마復州司馬로 좌천되었다.
영호도令狐綯가
을
항주자사杭州刺史로
의정擬定하자 선종이 이르기를, “나는 들으니 이원의 시에 ‘기나긴 날을 오직 바둑을 두며 보내네.[
장일유소일국기長日惟消一局棊]’라고 하였으니, 어떻게 사람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하였다.
영호도가 아뢰기를, “시인이 이것을 가탁하여 흥을 돋우는 것이지 반드시 실제로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하니, 선종이 이르기를, “일단 가게 하라. 시험삼아 살펴보겠다.” 하였다.
선종이 조서를 내려 자사刺史는 외지에서 임지를 옮기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경사京師에 이르러 직접 그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살핀 뒤에 제수하게 하였는데, 영호도가 일찍이 그 친구를 이웃 고을의 자사로 옮기고는 곧바로 임지로 가게 하였다. 선종이 그의 사표謝表를 보고 영호도에게 까닭을 물으니, 영호도가 대답하기를, “그 부임하는 곳이 가까워 백성들이 전송하고 맞이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선종이 이르기를, “짐은 자사들 중에 자질이 부족한 자가 많아서 백성의 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만나 보고서 그가 시행한 정사를 묻고 그 우열을 알아서 출척黜陟을 행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조명詔命이 이미 반포되었는데 곧바로 폐기하고 시행하지 않으니, 재상이 권력이 있다고 할 만하다.” 하였다. 이때 날씨가 한창 추웠는데, 영호도는 식은땀이 나서 두꺼운 털옷 밖으로 배어나왔다.
선종이 조정에 임어하여 군신들을 빈객 대하듯이 하니, 좌우의 근신이라도 나태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재상이 일을 아뢸 때마다 선종의 곁에 한 사람도 서 있는 사람이 없었으나 위엄 때문에 쳐다보지 못하였다.
일을 다 아뢰고 나면 갑자기 기운을 화평하게 하여 이르기를, “한가한 얘기를 해도 괜찮다.”라고 하고, 이어 여염의 자잘한 일들을 묻기도 하고 궁중의 연회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며 얘기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가 1각刻 정도 지난 뒤에 다시 용모를 가다듬고 이르기를, “경들은 잘하라. 짐은 항상 경들이 짐을 저버려서 후일 다시 서로 보지 못할까 두렵다.” 하고, 일어나서 궁宮으로 들어갔다.
영호도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10년 동안 정사를 맡아 은혜와 예우를 가장 잘 받았다. 그러나 연영전延英殿에 들어가 일을 아뢸 때마다 땀이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