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月에 上帥舟師攻蠻子海牙于峪溪口하야 大敗其衆하고 遂與諸將으로 定渡江之計한대 諸將咸欲直趨金陵하니 上曰 取金陵이면 必自采石始라 采石은 南北喉襟이니 得采石이면 金陵可圖也라하다
六月에 上率徐達馮國用邵榮湯和李善長常遇春鄧愈耿君用毛廣廖永安하야 各引舟渡江할새 上與永安으로 擧帆前行한대 永安請所向이라
上曰 采石은 大鎭이니 其備必固요 牛渚磯는 前臨大江하니 彼難爲備禦라 今往攻之면 其勢必克이라하고 乃引帆向牛渚한대
風力稍勁하야 頃刻及岸이어늘 守者驚駭하야 出兵來拒라가 上麾甲士以進하니 敵不支하야 卽走라
常遇春이 奮戈先登하고 諸軍이 鼓勇繼之하니 采石鎭兵이 驚潰하고 遂拔之하니 緣江諸壘이 望風迎附하다
遂乘勝하야 徑取太平하고 執其萬戶納哈出이라 太平路總管靳義는 出東門하야 赴水死한대 上聞之曰 義士也라하고 具棺斂葬之하다
耆儒李習陶安等이 率父老하고 出城迎上한대 安見上狀貌하고 謂習等曰 龍姿鳳質이니 非常人也라 我輩今有主矣라하다
上之發采石也에 先令李善長으로 爲戒戢軍士榜한대 比入城에 卽張之하니 及拔城에 士卒이 欲剽掠이라가 見榜揭通衢하고 皆愕然不敢動이라
有一卒違令이어늘 卽斬以徇하니 城中肅然이라 富民陳迪等이 獻金帛하니 卽以分給諸將士라 改太平路하야 爲太平府라
諸將이 奉上爲大元帥하니 命諸將하야 分守各門하고 修城浚濠하야 以固守禦라
5월에 태조가 주사舟師를 거느리고 욕계구峪溪口에서 만자해아蠻子海牙를 공격하여 그 무리를 크게 격파하고 마침내 여러 장수들과 함께 장강長江을 건널 계획을 정했는데, 여러 장수들이 모두 곧바로 금릉金陵으로 진격하고자 하니, 태조가 이르기를, “금릉을 취하려면 반드시 채석采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채석은 남북의 요충지이니, 채석을 얻으면 금릉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6월에 태조가
서달徐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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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邵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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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장李善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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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군용耿君用․
모광毛廣․
등을 거느리고 각각 배를 인솔하여 장강을 건널 때 태조가 요영안과 함께 돛을 올려 앞서 갔는데, 요영안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태조가 이르기를, “채석은 큰 진鎮이니 그 수비가 반드시 견고할 것이고, 우저기牛渚磯는 앞으로 큰 강에 닿아 있으니 저들이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가서 공격하면 그 형세로 볼 때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이에 선박을 인솔하여 우저기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어서 잠시 만에 강가에 이르렀는데, 지키던 군사들이 깜짝 놀라 병장기를 꺼내어 와서 항거하다가 태조가 갑사甲士를 지휘하여 진격하니 적이 버티지 못하고 바로 달아났다.
또 상우춘이 창을 휘두르며 먼저 올라가고 군사들이 용기를 북돋워 따라 올라가니, 채석진采石鎭의 병졸들이 놀라 궤멸되고 마침내 채석진을 점령하였다. 그러자 연안의 여러 보루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항복하여 태조를 맞이하였다.
마침내 승세를 타서 곧바로
태평太平을 함락시키고
만호萬戶 를 사로잡았다.
태평로太平路의
총관總管 근의靳義는
동문東門으로 나가 물에 뛰어들어 죽었는데, 태조가 그 소식을 듣고 이르기를, “
의사義士로다.” 하고,
관렴棺斂을 갖추어 장사 지내게 하였다.
덕德이 높은
노유老儒 이습李習과
등이
부로父老들을 인솔하고
성城을 나와 태조를 맞이하였는데, 도안이 태조의 모습을 보고 이습 등에게 이르기를, “
용龍의 자태이고
봉鳳의 자질이니,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야 주인을 만난 것입니다.” 하였다.
태조는 채석采石을 출발할 때 먼저 이선장李善長으로 하여금 군사들을 경계警戒하여 금지禁止하는 내용으로 방문榜文을 짓게 하였는데, 성에 들어왔을 때 바로 그 방문을 게시하니, 성을 함락했을 때 사졸士卒들이 민간의 재물을 노략질하려 하다가 사거리에 게시된 방문을 보고 모두 깜짝 놀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당시 사졸士卒 한 명이 명을 어겼는데, 즉시 참수하여 조리돌리자 성중城中이 두려워하였다. 또 부유한 백성 진적陳迪 등이 황금과 비단을 바치자 바로 여러 장사將士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태평로太平路를 태평부太平府로 고쳤다.
여러 장수들이 태조를 대원수大元帥로 받드니 장수들에게 명하여 각각 성문城門을 나누어 지키게 한 다음 성을 보수하고 해자를 준설浚渫하여 견고하게 방어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