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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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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17
○秋七月 上謂丞相汪廣洋曰 朕觀前代人君 多喜佞諛하야 以飾虛名하고 甚至臣下詐爲瑞應하야 以恣矯誣하고 至於天灾垂戒어늘 厭聞于耳하니라 如宋眞宗 亦號賢君이나 初相李沆 日聞灾異하니 其心猶存警惕이러니
厥後澶淵旣盟 大臣首啓天書하야 以侈其心하고 群下曲意迎合하야 苟圖媚悅하야 致使言祥瑞者 相繼於途하고 獻芝草者 三萬餘本이라
朕思凡事 惟在於誠이니 況爲天下國家而可以僞乎 爾中書 自今凡祥瑞 不必奏 如灾異及蝗旱之事 卽時報聞하라
廣洋叩首曰 陛下敬天勤民 孰大於此리오 非惟四海蒼生蒙福이라 誠爲聖子神孫萬世之謨訓也니이다


30-1-17
가을 7월에 태조가 승상 에게 이르기를, “짐이 보건대 전대의 임금들이 대부분 아첨을 좋아하여 허명虛名을 꾸미고, 심지어 신하가 거짓으로 상서祥瑞를 만들어내 멋대로 임금을 속이고, 하늘이 재앙을 내려 경계를 보이는데도 듣기를 싫어하기까지 하였다. 나라 진종眞宗 같은 임금은 현군賢君이라고 일컬어졌는데 처음 재상 이 날마다 재이災異를 아뢰니 진종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렇지만 그 후로 하고 나서는 대신大臣이 맨 먼저 천서天書를 아뢰어 그 마음을 사치스럽게 하고, 여러 신하들이 지조를 버리고 황제의 뜻에 영합하여 구차하게 아첨하여 상서祥瑞를 말하는 자가 길에서 끊이지 않고 지초芝草를 바친 것이 3만여 에 이르게 하였다.
짐이 생각하기에 모든 일은 오직 정성에 달려 있는데 더구나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데 거짓으로 할 수 있겠는가. 너희 중서성은 지금부터 모든 상서祥瑞를 아뢸 필요가 없고, 재이나 메뚜기의 재해나 가뭄의 일은 즉시 보고하라.” 하였다.
왕광양이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기를, “폐하께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시는 것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습니까. 사해四海의 백성들이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우리 나라 후세 왕들의 만세토록 교훈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汪廣洋 : ?~1379. 자는 朝宗이다. 元나라 때 진사에 급제하였고, 經學에 능통하고 篆書와 隸書를 잘 썼다. 벼슬은 右丞相에까지 올랐고, 인품이 관대하고 지조가 있었다. 후에 海南에 유배되어 賜死되었다. 저서에 ≪風池吟稿≫가 있다.
역주2 李沆 : 947~1004. 宋나라 太宗과 眞宗 때 사람으로 자는 太初이다. 벼슬은 尙書右僕射에 이르렀고, 太尉․中書令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文靖이다.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고 세상 풍속을 진정시켰으며, 先見之明이 있는 명재상으로 일컬어진다.
역주3 澶淵에서 會盟 : 澶淵은 河北省 僕陽縣 서북쪽에 있는 땅이다. 遼나라의 聖宗이 강화된 국력을 바탕으로 宋나라로 쳐들어가 澶州의 北城을 포위하자, 송나라 진종이 재상 寇準의 권유에 따라 몸소 군대를 이끌고 전주의 南城으로 출진하였다. 이에 성종은 송나라를 형으로 하고 요나라를 아우로 하며, 송나라에서 해마다 은 10만 냥과 명주 20만 필을 歲幣로 보내며, 양국 간의 국경은 현상을 유지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유리한 맹약을 성립시키고 철군하였다.(≪宋史≫ 권283 〈王欽若列傳〉)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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