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歷代君鑑(2)

역대군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역대군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1-8
○左軍中尉吐突承璀領功德使하야 盛修安國寺하고 奏立聖德碑하야 先構樓하고 請勅學士撰文하야 欲以萬緡酬之하니
上命李絳爲之한대 絳言 堯舜禹湯未嘗立碑하야 自言聖德하고 惟秦始皇刻石하야 高自稱述하니 未審陛下欲何所法 且敍修寺之美 豈所以光益聖德이리오
上覽奏 承璀適在旁이라 命曳倒碑樓한대 承璀言樓大不可曳라하야 請徐毁撤하야 冀得延引하고 乘間再論이러니
上厲聲曰 多用牛曳之하라 承璀乃不敢言하고 凡用百牛하야 曳之乃倒하다


17-1-8
좌군중위左軍中尉 를 맡아 를 성대하게 수리하고 나서 성덕비聖德碑를 세우기를 주청하였다. 먼저 비루碑樓를 지어놓고서 학사學士에게 비문을 짓게 하도록 청하고 1만 으로 포상하기를 원하였다.
헌종이 이강李絳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니, 이강이 말하기를, “임금, 임금, 임금, 임금은 비석을 세워서 성덕聖德을 스스로 말한 적이 없고, 오직 시황始皇만이 비석을 세워서 자기의 덕을 스스로 높이 칭송하였으니, 폐하께서는 누구를 본받으려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절을 화려하게 수리한 일을 기술한다면 그것이 어찌 성덕을 더욱 빛내는 일이 되겠습니까.” 하였다.
헌종이 주문奏文을 볼 때에 토돌승최가 마침 곁에 있었다. 비루를 끌어서 넘어뜨리라고 명하자, 토돌승최가 말하기를 비루가 커서 끌 수 없다고 하고, 천천히 훼철하기를 청하여 시일을 끌다가 틈을 봐서 다시 논하려고 하였다.
헌종이 성난 목소리로 이르기를, “소를 많이 사용하여 끌어라.” 하니, 토돌승최가 감히 말하지 못하고 소 백 마리를 써서 끄니 마침내 비루가 넘어졌다.


역주
역주1 吐突承璀 : ?~820. 唐나라 閩 사람으로, 환관이다. 자는 仁貞이다. 憲宗 때 左神策護軍中尉에 제수되고 薊國公에 봉해졌다. 穆宗이 즉위한 뒤에 일찍이 토돌승최가 灃王을 옹립하려는 논의를 했다고 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2 功德使 : 천하의 승려와 도사와 女冠을 관리하는 관직의 명칭이다. 당나라 초에는 승려와 도사와 여관을 모두 鴻臚寺에 예속시켰다. 貞元 4년(788)에 崇玄館大學士를 혁파하였다가 후에 다시 左右街大功德使, 東都功德使, 修功德使를 설치하여 승려의 籍을 총괄하게 하였다. 元和 2년(807)에 도사와 여관을 좌우공덕사에 예속시켰다. 會昌 2년(842)에 승려를 主客太淸宮에 예속시키고, 玄元館을 설치하고 學士를 두었다. 회창 6년에 이를 폐지하고 승려를 다시 兩街功德使에 예속시켰다.(≪新唐書≫ 권48 〈百官志 正宗寺〉)
역주3 安國寺 : 唐나라 수도 長安의 朱雀街 동쪽 第4街 長樂坊에 있던 절 이름이다. 睿宗 景雲 원년에 潛邸를 희사하여 절로 만들고, 예종의 本封 安國相王唐의 이름을 따서 안국사로 이름지었다.(≪資治通鑑≫ 권237 〈唐紀〉)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