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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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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 帝大起北宮할새 時天旱하니
尙書僕射鍾離意 詣闕免冠하고 上疏曰 昔成湯 遭旱 以六事 自責曰 政不節邪 使民疾邪 宮室營邪 女謁盛邪 苞苴行邪 讒夫昌邪
竊見北宮大作 民失農時하니 自古 非苦宮室小狹이라 但患民不安寧하나니 宜且罷止하야 以應天心하소서
帝策詔報曰 湯引六事 咎在一人하니 其冠履勿謝하라하고
又敕大匠하야 止作諸宮하고 減省不急하고 詔因謝公卿百僚하니 遂應時澍雨하다


11-1-6 여름에 명제가 북궁北宮을 크게 지을 때에 당시 가뭄이 들었다.
상서복야尙書僕射 가 대궐에 나와서 을 벗고 사례하며 상소하기를 “옛날 성탕成湯이 가뭄을 만나 자책自責하기를 ‘정사에 절도가 없는가. 백성을 부리기를 고통스럽게 하였는가. 궁실을 경영하였는가. 여인의 청탁이 많았는가. 뇌물이 성행하였는가. 아첨하는 무리가 많았는가.’ 하였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북궁北宮을 크게 짓자 백성들이 농시農時를 잃었으니, 예로부터 궁실宮室이 조금 협소한 것은 고민할 것이 아니라 다만 백성이 편안하지 못한 것을 근심하였습니다. 마땅히 공사를 중지하여 하늘의 마음에 부응하소서.” 하였다.
명제가 자책하고 조서를 내려 대답하기를, “성탕成湯육사六事를 인용함에 그 허물이 나 한 사람에게 있으니, 그대들은 하였다.
장작대장將作大匠에게 칙명勅命을 내려 여러 궁궐의 공사를 중지하게 하고 급하지 않은 비용을 감축하게 하며 조서를 내려 공경公卿백료百僚에게 사례하니, 마침내 때에 맞게 단비가 내렸다.


역주
역주1 鍾離意 : 후한 때 山陰 사람으로 자는 子阿이다. 明帝 때 尙書까지 지냈다.
역주2 六事 : 湯임금이 7년의 大旱을 만나 스스로 犧牲이 되어 桑林의 들에서 기도할 적에 여섯 가지 일로 자신을 책망하여 이르기를 “정사가 간략하지 못한가. 백성이 직업을 잃었는가. 궁실이 높은가. 부녀자의 청탁이 성한가. 뇌물이 행해지는가. 아첨하는 무리가 많은가.[政不節歟 民失職歟 宮室崇歟 女謁盛歟 苞苴行歟 讒夫昌歟]”라고 하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천 리 지방에 큰비가 내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十九史略≫ 권1 〈殷〉)
역주3 冠履를……말라 : 군신 관계에 제약되어 충성스러운 신하의 直諫을 사양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冠履는 머리에 쓰는 관과 발에 신는 신발로, 상하와 존비의 관계를 비유하는 말이다. 漢나라의 賈誼가 文帝에게 글을 올려 죄를 지은 대신들을 낮은 관리가 함부로 대하는 것을 비판하여 “신발은 비록 곱더라도 베개 위에 올려놓지 않으며, 冠은 비록 해졌더라도 신발의 깔창으로 쓰지 않는다.[履雖鮮 不加於枕 冠雖敝 不以苴履]”라고 하여 위계질서를 지킬 것을 강조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漢書≫ 권48 〈賈誼傳〉)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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