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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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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8
○慶曆三年 自正月不雨하야 至于四月하니 遣使祠禱于嶽瀆하고 群臣請帝親禱于郊하니 帝曰 太史言月二日當雨라하니 今將以日出禱호리라
王素曰 臣非太史 然度是日必不雨하리니 陛下知其且雨而禱之하시니 應天不以誠故也
時王德用進二女어늘 素論之한대 帝曰 朕眞宗皇帝子 卿王(朝)[旦]子也 有世舊하니 非他人比 德用實進女 然已事朕左右하니 柰何 素曰 臣之憂 正恐在左右耳
帝動容하고 立命遣二女出宮하고 而賜素以銀緋하다


23-1-18
경력慶曆 3년(1043)에 정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서 4월에 이르니 사자使者를 보내 에 기우제를 지내고 신하들이 인종에게 친히 교외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를 청하자 인종이 이르기를, “태사太史가 이달 2일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니, 지금 아침 해가 나오면 나가서 기도하겠다.” 하니,
가 아뢰기를, “신이 태사는 아니지만 헤아려보건대 이날은 결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왜냐하면 폐하께서 장차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고서 기도하시니, 하늘의 뜻에 호응하기를 정성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납간견녀納諫遣女납간견녀納諫遣女
이때 이 두 딸을 바치자 왕소가 반대하니, 인종이 이르기를, “짐은 진종황제의 아들이고 경은 의 아들이다. 세의世誼가 있으니 다른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왕덕용이 사실 딸을 바쳤으나 〈그전에〉 이미 짐을 좌우에서 섬기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니, 왕소가 아뢰기를, “신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좌우에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하니,
진종이 정색을 하고 그 자리에서 왕덕용의 두 딸을 궁에서 내보내라고 명하고 왕소에게 은으로 만든 인장과 붉은색 인끈을 하사하였다.


역주
역주1 嶽瀆 : 五嶽과 四瀆을 이른다. 오악은 중국의 다섯 명산으로 泰山, 華山, 衡山, 恒山, 嵩山을 가리키고, 사독은 네 개의 큰 강으로 揚子江, 黃河, 淮水, 濟水를 가리킨다.
역주2 王素 : 1007~1073. 宋 仁宗 때의 문신으로 자는 仲儀이고, 시호는 懿敏이며, 명재상 王旦의 아들이다. 벼슬이 工部尙書에 이르렀는데, 직간을 잘했으며 成都府知事 등 지방관을 두루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宋史≫ 권320 〈王素列傳〉)
역주3 王德用 : 979~1057. 宋나라 鄭州 管城 사람으로, 자는 元輔이다. 용맹한 장수로서 많은 전공을 세워 仁宗 때 簽書樞密院事가 되었다. 당시 천하에 명성이 자자하여 위엄 있고 남다른 모습이 신하의 상이 아니라는 풍문이 돌자, 御史中丞으로 있던 孔道輔가 이를 탄핵하여 武寧軍節度使로 좌천되었으나 뒤에 다시 추밀사가 되고 魯國公에 봉해졌다
역주4 王旦 : 957~1017. 자는 子明이고, 호는 惕齋이다. 眞宗 때 18년간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死後에 魏國公으로 追封되었다. 그는 인재를 두루 등용하되 자신의 친족은 제외하였고, 자손을 위해 전답이나 가옥을 사들이는 것은 그들을 불의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평생 검약하게 살았다.(≪宋史≫ 권282 〈王旦列傳〉)
역주5 (朝)[旦] : 저본에는 ‘朝’로 되어 있으나, ‘朝’는 朝鮮 太祖 李成桂가 왕위에 오른 뒤 ‘旦’으로 개명하였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避諱하여 ‘朝’로 쓴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 글자인 ‘旦’으로 돌려놓았다. 아래도 같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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