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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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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5
○九月 召終南山隱士种放爲左司諫하야 直昭文館하다 咸平初 放母卒하니 帝詔賜以粟帛緡錢이러니
四年 張齊賢言 放隱居三十年 孝行純至하야 可勵風俗이요 簡朴退靜 無謝古人이니이다
帝遣召之하니 放不起한대 齊賢復以爲言하니 下詔褒美하고 遣使召之하야 放辭不允하니 乃詣京師하다
至是對於崇政殿하야 賜坐與語하야 詢及民政邊事하니 放對曰 明王之治 愛民而已 惟徐而化之라하고 餘皆不對러라 卽日授左司諫하야 直昭文館하니
放固辭한대 不許하고 賜緋衣銀魚犀帶象簡昭慶坊第宅一區하고 加帷帳什物 銀器五百兩錢三十萬하고 御制五言詩寵之하고 時召對焉이라
明年固請還山한대 許之하고 遷起居舍人하고 命館閣官宴餞於瓊林苑하고 帝賜詩三章이라 放旣還 又遣使撫問하고 圖其林泉居處하야 趣令入覲하다


22-1-15
9월에 종남산終南山은사隱士 을 불러서 좌사간左司諫으로 삼아 소문관昭文館입직入直하게 하였다. 함평咸平 초에 충방의 어머니가 죽자 진종이 곡식과 비단과 을 하사하라고 명하였다.
함평 4년에 이 말하기를, “충방이 30년 동안 은거하면서 효행이 지극히 순수하여 풍속을 권면할 수 있고, 순박하고 겸손함이 옛사람에 못지않습니다.” 하였다.
진종이 관원을 보내 불렀으나 충방이 나오지 않자 장제현이 다시 말하니 조서를 내려 칭찬하고 사자使者를 보내 불렀는데 충방이 사양했으나 윤허하지 않으니 마침내 경사에 올라왔다.
이때에 이르러 숭정전崇政殿에서 소견召見하여 자리를 내주고 그와 얘기하면서 민정民政과 변경의 일을 물으니, 충방이 대답하기를, “밝은 임금의 정치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뿐이니 천천히 교화시키십시오.” 하고, 나머지는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에 바로 좌사간을 제수하여 소문관에 입직하게 하였다.
충방이 고사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관복官服비의緋依은어부銀魚符서대犀帶상아象牙로 만든 소경방昭慶坊의 집 한 채를 하사하고, 유장帷帳집기什器은기銀器 500 돈 30만 을 더 하사하고, 친히 오언시五言詩를 지어 총애하였으며, 때때로 소대召對하였다.
이듬해에 종남산으로 돌아가겠다고 강하게 청하자 윤허하고,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승진시키고 관각館閣에 명하여 경림원瓊林苑에서 전별연餞別宴을 베풀게 하고 진종이 3을 하사하였다. 충방이 종남산으로 돌아간 뒤에 또 사자를 보내 위문하고 그가 살고 있는 산천山川과 사는 집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충방에게 들어와 알현하게 하라고 재촉하였다.


역주
역주1 种放 : 955~1015. 宋나라 洛陽 사람으로, 자는 名逸이고, 호는 雲溪醉侯이다. 모친을 모시고 終南山에 은둔하여 농사를 지으며 講學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眞宗 때에 부름을 받고 左司諫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후 모친의 명령을 따라 벼슬을 버리고 다시 종남산으로 돌아갔다
역주2 緡錢 : 銅錢 1,000文을 노끈으로 꿴 꾸러미 단위이다.
역주3 張齊賢 : 942~1014. 宋나라 寃句 사람으로, 자는 師亮이고, 시호는 文定이다. 眞宗 때 兵部尙書ㆍ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司空에 이르고, 저서에 ≪洛陽縉紳舊聞記≫가 있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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