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年春에 匈奴右賢王數侵擾朔方이어늘 上令車騎將軍衛靑將三萬騎出高闕하고 將軍蘇建李沮公孫賀李蔡俱出朔方하고 李息張次公俱出右北平하니 凡十餘萬人이라 皆領屬靑하야 擊匈奴하다
右賢王飮醉어늘 靑等夜至圍之하니 右賢王驚潰圍北去어늘 得裨王十餘人衆萬五千餘人畜數十百萬하다
於是引兵還하니 上使使者持大將軍印卽軍中拜靑爲大將軍하고 諸將皆屬하고 益封八千七百戶하고 封靑三子諸將校尉七人하야 爲列侯하다
8-1-11
원삭元朔 5년(B.C. 124) 봄에 흉노
이
삭방朔方을 자주 침범하여 어지럽히자 무제가
거기장군車騎將軍 위청衛靑에게 3만
기騎를 거느리고
고궐高闕에서 〈흉노를 향해〉 출동하고, 장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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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함께
삭방朔方에서 출동하고,
․
은 함께
우북평右北平에서 출동하게 하니 도합 10여만 명이었다. 모두 위청에게 예속시켜 흉노를 치게 하였다.
우현왕이 술을 마시고 취하자 위청 등이 밤에 포위하자 우현왕이 놀라서 포위를 뚫고 북쪽으로 달아나니 비왕裨王 10여 명과 군사 5,000여 명과 가축 수십만 마리를 노획하였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니 무제가 사자使者를 보내 대장군大將軍의 인장印章을 가지고 가서 군중軍中에 나아가 위청을 대장군에 제수하고 여러 장수들을 모두 예속시키고 8,700호戶를 더 봉封해주고, 위청의 세 아들과 여러 장수와 교위校尉 7인을 열후列侯로 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