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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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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13
○十八年冬十月 上過滁州할새 登琅瑘山하야 指示學士楊士奇曰 此醉翁亭故趾也라하고 因歎歐陽脩立朝正言不易得이어늘 今人知愛其文而知其忠者鮮矣라하다
蓋上爲文章 尤善脩하야 每曰 三代以下文人 獨脩有雍容和平氣象이라한대 尤愛其奏議切直하야 嘗命刊脩文하야 以賜群臣하고 且諭之曰 脩之賢 非止於文이니 卿等 當考其所以事君者而勉之하라하다


33-1-13
영락永樂 18년(1420) 겨울 10월에 인종이 저주滁州를 지날 적에 낭야산琅瑘山에 올라 학사學士 를 가리키며 이르기를, “이곳은 의 옛터이다.” 하고, 인하여 탄식하기를, “구양수歐陽脩가 조정에 서서 바른말을 했던 일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요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문장을 좋아할 줄만 알지 그 사람의 충성을 아는 이가 드물다.” 하였다.
취옹정도醉翁亭圖취옹정도醉翁亭圖
대개 인종은 문장을 지을 때 구양수의 문체를 매우 좋아하여 매번 이르기를, “삼대三代 이하의 문인文人 가운데 구양수만이 옹용雍容하고 화평和平기상氣象이 있다.” 하였는데, 그 간절하고 강직한 주의奏議를 더욱 사랑하여 일찍이 구양수의 문장을 간행하도록 명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하사하고 또 유시諭示하기를, “구양수의 어진 점은 문장에만 그치지 않으니, 경들은 그가 임금을 섬긴 까닭을 상고하여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역주
역주1 楊士奇 : 1365~1444. 士奇는 明나라 초기의 대신 楊寓의 자이다. 호는 東里先生이다. 惠帝 建文 초에 천거를 받아 翰林에 들어가 ≪太祖實錄≫을 편찬했다. 永樂帝(成祖)가 즉위한 뒤 編修에 임명되고, 내각제도가 정착하자 楊榮과 함께 입각하여 정무에 참여했다. 이후 5대에 걸쳐 내각에 있으면서 輔臣으로 40여 년을 봉직했다. 禮部侍郞 兼 華蓋殿大學士에 올라 兵部尙書를 겸했는데, 청렴하고 유능함으로 천하의 칭송을 들었다. 양영․楊溥와 함께 三楊으로 불렸다. 시호는 文貞이다. 저서에 ≪東里全集≫․≪文淵閣書目≫ 등이 있다.(≪明史≫ 권148 〈楊士奇列傳〉)
역주2 醉翁亭 : 北宋의 구양수가 滁州知事로 재임할 때 지은 정자이다. 그는 저주가 강호를 끼고 있는 절경인 데다 政事가 잘 다스려졌으므로 이 정자를 지어 백성과 함께 잔치를 벌인 뒤에 그 일을 기록하여 〈醉翁亭記〉를 지었다.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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