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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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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군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初 瑯琊諸葛亮 寓居襄陽隆中하야 每自比管仲樂毅하니 時人 莫之許也로되 惟潁川徐庶崔州平 許之러라
帝訪士於襄陽司馬徽하니 徽曰 儒生俗士 豈識時務리오 識時務者 在乎俊傑하니 此間 自有伏龍鳳雛 帝問爲誰 曰 諸葛孔明 龐士元也
徐庶亦謂帝曰 諸葛孔明 臥龍也 將軍豈願見之乎 帝曰 君與俱來하라하니 庶曰 此人 可就見이언정 不可屈致也 將軍 宜枉駕顧之하라
帝由是詣亮하야 凡三往乃見하고 因屛人曰 漢室傾頹 姦臣竊命이라 孤不度德量力하고 欲信大義於天下 而智術淺短하야 遂用猖蹶하야 至于今日이라 然志猶未已하니 謂計將安出
亮曰 今曹操擁百萬之衆하야 挾天子而令諸侯하니 誠不可與爭鋒이요 孫權 據有江東하야 已歷三世 國險而民附하고 賢能 爲之用하니 可與爲援而不可圖也
荊州 北據漢沔하고 利盡南海하며 東連吳會하고 西通巴蜀하니 用武之國이로되 而其主不能守하니 殆天所以資將軍也
益州 險塞 沃野千里하야 天府之土어늘 劉璋 闇弱하고 張魯在北하야 民殷國富로되 而不知存恤하니 智能之士 思得明君이라
將軍 旣帝室之胄 信義著於四海하니 若跨有荊益하야 保其巖阻하고 西和諸戎하고 南撫夷越하고 外結孫權하고 內修政理하야 天下有變이어든 則命一上將하야 將荊州之軍하야 以向宛洛하고 將軍 身率益州之衆하야 出於秦川하면 百姓 孰敢不簞食壺漿으로 以迎將軍者乎리오
誠如是 則霸業 可成하고 漢室 可興矣니이다 帝曰 善타하다
於是 與亮情好日密하니 關羽張飛不悅이어늘 帝解之曰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 勿復言하라하니 羽飛乃止하다


12-1-2 처음에 낭야琅邪 사람인 제갈량諸葛亮에 우거하며 항상 자신을 관중管仲악의樂毅에게 견주니,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오직 영천潁川 사람인 서서徐庶최주평崔州平만은 그를 인정하였다.
소열제가 양양襄陽사마휘司馬徽에게 훌륭한 선비를 물으니, 사마휘가 말하기를 “유생儒生속사俗士가 어찌 시무時務를 알겠습니까. 시무時務를 아는 것은 준걸俊傑에게 달려 있으니, 이 지역에 복룡伏龍봉추鳳雛가 있습니다.” 하였다. 소열제가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제갈공명諸葛孔明방사원龐士元입니다.” 하였다.
서서徐庶 또한 소열제에게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이니, 장군은 어찌 그를 만나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소열제가 말하기를 “그대가 그와 함께 오라.” 하니, 서서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찾아가서 볼 수는 있을지언정 굴복시켜 오게 할 수는 없으니, 장군이 왕림하여 그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소열제가 이로 말미암아 제갈량을 찾아가서 모두 세 번을 가서야 비로소 제갈량을 만나보고 인하여 사람들을 물리치고 말하기를 “나라 황실이 기울어짐에 이 황제의 권위를 절취하고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의 역량力量을 헤아리지 못하고 천하에 대의大義를 펴고자 하나 지모智謀권술權術이 짧고 얕아서 마침내 실패를 겪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나의 뜻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그대는 장차 어떻게 계책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였다.
제갈량이 대답하기를, “지금 조조는 백만의 병력을 보유한데다가 천자天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함께 예봉銳鋒을 다툴 수 없고, 손권孫權강동江東 지방을 점거하여 이미 를 지났는데다 나라의 지세地勢가 험하고 백성들이 따르며 현능한 자들이 그에게 등용되었으니 이는 함께 동맹同盟할 만하지만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형주荊州는 북쪽으로 한수漢水면수沔水를 점거하고 남해南海의 이익을 다 차지하였으며 동쪽으로 와 연접하고 서쪽으로 파촉巴蜀과 통하니 이는 무력武力을 쓸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하늘이 장군을 돕는 듯합니다.
익주益州는 험한 요새지이고 비옥한 들이 천 리에 이어져 있어 입니다. 그러나 이곳을 다스리는 유장劉璋은 어리석고 무능하며, 북쪽에 있는 는 백성이 많고 나라가 부유하지만 백성들을 위로하고 구휼할 줄 모르니, 지혜롭고 유능한 선비들은 현명한 군주를 얻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군은 황실皇室의 후손으로 신의信義사해四海에 드러났으니, 만약 형주荊州익주益州를 차지하여 산천의 험고險高함을 확보하고 서쪽으로 융족戎族과 화친하고 남쪽으로 을 어루만지며 밖으로 손권孫權과 우호를 맺고 안으로 정치를 닦아서, 천하에 변란이 있을 때 한 사람의 상장군上將軍에게 명하여 형주의 병력을 거느리고 완현宛縣낙양洛陽으로 향하게 하고 장군이 직접 익주益州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진천秦川으로 나간다면, 백성百姓들이 누가 감히 으로 장군을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그렇게 되면 패업霸業을 이룩할 수 있고 나라 황실을 부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소열제가 이르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이에 제갈량과 정의情誼가 날로 친밀해지니, 관우關羽장비張飛가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열제가 이들에게 해명하기를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으니, 바라건대 그대들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 하니, 관우와 장비가 이에 그만두었다.
君臣魚水君臣魚水


역주
역주1 襄陽의 隆中 : 襄陽은 春秋時代 楚나라의 邑이었는데, 秦나라가 천하를 겸병하고 漢水 이북을 南陽이라 하였으니 지금의 鄧州가 이곳이요, 漢水 이남을 南郡이라 하였으니 지금의 荊州가 이곳이다. 襄陽은 바로 南陽과 南郡 두 郡의 땅이다. ≪三國志≫ 〈蜀書 諸葛亮傳〉의 註에 “諸葛亮은 南陽의 鄧縣에 거주하였으니, 隆中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역주2 姦臣 : 曹操를 이른다.
역주3 三代 : 孫堅, 孫策, 孫權을 말한다.
역주4 吳會 : 吳 지방으로, 荊州․揚州․交州․廣州의 都會를 가리킨다. 吳都라고도 한다. 지금의 蘇州 지역이다. 또는 吳會를 吳郡과 會稽郡으로 보는 설이 있다.
역주5 天府의 땅 : 재물이 모이는 곳을 府라 하니, 益州 땅은 물산이 풍부하여 넉넉히 공급함에 대비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6 張魯 : 후한 말기에 漢中을 점거하고 있으면서, 鬼道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스스로 師君이라 칭하던 인물이다.
역주7 夷越 : 장강 중하류 유역 남쪽에 살던 여러 부족이나 지역을 통칭한 것이다.
역주8 簞食壺漿 : 백성들이 자기들을 옹호해주는 군대를 환영하고 위로해주는 경우를 비유한다. ≪孟子≫ 〈梁惠王 下〉에 “대그릇 밥과 병에 담은 酒漿으로 왕사를 맞이했다.[簞食壺漿 以迎王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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