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一年春正月에 東平王蒼이 與諸王으로 俱來朝라가 月餘에 還國할새
帝臨送이라가 歸宮에 悽然懷思하야 乃遣使手詔하사 賜東平國中傅曰
辭別之後에 獨坐不樂하야 因就車歸하야 伏軾而吟하야 瞻望永懷호니 實勞我心이러니 誦及采菽에 以增歎息이라
日者에 問東平王호되 處家에 何等最樂고하니 王이 言 爲善最樂이라하니 其言甚大하야 副是腰腹이라
今送列侯印十九枚하니 諸王子五歲以上能趨拜者를 皆令帶之하라
11-1-11 영평永平 11년(68) 봄 정월에 동평왕東平王 유창劉蒼이 여러 왕과 함께 와서 조회하고 달포 뒤에 봉국封國으로 돌아갈 때,
명제가 송별의 자리에 임하였다가 궁으로 돌아와 처연히 그리워하여 이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손수 쓴 조서를 내려 동평국東平國의 중부中傅(환관宦官)에게 주며 이르기를,
“이별한 뒤에 홀로 앉아 있자니 즐겁지 아니하여 그대로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 수레의 가로나무[
식軾]에 엎드려 시를 읊조리고 길이 그대가 떠난 곳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으니 실로 내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다가
을 읊을 때에 이르러서는 더욱 탄식하였다.
일전日前에 동평왕에게 ‘집에 있을 때에 무슨 일이 가장 즐거운가?’ 물었는데, 동평왕이 말하기를 ‘
선善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 하였으니, 그 말이 매우 훌륭하여
이제 열후列侯의 인장印章 19개를 보내니, 여러 왕자王子 중에 나이가 5세 이상으로 종종걸음으로 와서 절할 수 있는 자에게 모두 이 인장을 차게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