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宗元皇帝는 諱睿요 字景文이니 宣帝曾孫이요 琅邪恭王覲之子也라 年十五에 嗣位琅邪王하다
幼有令聞이러니 及惠皇之際에 王室多故하니 帝每恭儉退讓하야 以免於禍하고 沈敏有度量하야 不顯灼然之跡이라
初鎭建康에 吳人不附러니 會三月上巳에 帝觀禊할새 乘肩輿하고 具威儀하니 王導及諸名勝이 皆騎從이러니
吳人顧榮賀循이 覘之驚異하야 相率拜於道左하니 導因進曰 顧榮賀循은 此土之望이니 未若引之하야 以結人心이라하니 帝乃使導로 躬行造循榮하니 二人이 皆應命而至라
由是로 百姓歸心하니 帝從容謂導曰 卿은 吾之蕭何也라하더라
13-2-1
중종中宗 원황제元皇帝는 이름이
예睿이고 자는
경문景文이니
선제宣帝(
사마의司馬懿)의
증손曾孫이고
낭야공왕琅琊恭王 사마근司馬覲의 아들이다. 나이 15세에
낭야왕琅邪王의 왕위를 이었다.
晉元帝
어려서 아름다운 명성이 있었다. 혜황惠皇(혜제惠帝 사마충司馬衷)의 시대에 이르러 왕실王室에 변고가 많으니 원제는 늘 공손하고 검소하며 겸손하여 화禍를 면하였고, 신중하고 민첩하며 도량이 있어서 영민한 자취를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
건강建康 지역에
진무鎭撫하였을 때
오인吳人이
귀부歸附하지 않았는데, 마침 3월
상사일上巳日에 원제가
를 구경할 때
견여肩輿를 타고
위의威儀를 갖추니
왕도王導 및 여러
명사名士들이 모두 말을 타고 따랐다.
당시
오인吳人 과
이 이것을 보고 놀랍고 신기하게 여겨 서로 이끌고 가서 길가에서 절하니, 왕도가 인하여 나아와 말하기를, “고영과 하순은 이 지방의 명망 있는 사람들이니 이들을 나오게 하여 인심을 결집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원제가 왕도로 하여금 직접 하순과 고영을 찾아가게 하니, 두 사람이 모두 명령에 응하여 왔다.
이때부터 백성들이 마음으로
귀부歸附하니, 원제가 왕도에게 조용히 이르기를, “
경卿은 나의
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