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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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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3
○ 秋七月 陽城人陳涉等 起兵於蘄하야 遂自立爲王하고 號張楚라하니 當是時하야 諸郡縣 苦秦法이라가 爭殺長吏以應涉이러라
謁者從東方來하야 以反者聞한대 二世怒하야 下之吏러니 後使者至어늘 問之한대 對曰 群盜 鼠竊狗偸 郡守尉方逐捕하야 今盡得하리니 不足憂也라하니 乃悅하다


37-2-3
가을 7월에 양성陽城 사람 등이 기현蘄縣에서 기병起兵하여 마침내 스스로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장초張楚라고 하였다. 이때를 당하여 여러 군현들이 나라의 법에 고통을 받다가 다투어 관장官長을 살해하고 진섭에게 호응하였다.
알자謁者가 동쪽으로부터 와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아뢰자 이세황제가 노하여 옥리에게 내렸다. 그 후에 사자使者가 왔을 때 물으니 사자가 대답하기를, “도둑 무리는 좀도둑들이라 군수郡守군위郡尉가 쫓아가 체포하여 지금 모두 잡았을 것이니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이세황제가 기뻐하였다.


역주
역주1 陳涉 : 秦나라 말기 사람으로 涉은 陳勝의 字이다. 二世皇帝 때 漁陽에 수자리를 살러 가게 되었는데, 진승도 징발되어 屯長으로서 900인의 일행과 함께 가다가 蘄縣 大澤鄉에 이르렀을 때 큰비를 만나 정해진 기한 안에 도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진나라는 법으로 기한을 어기는 사람들을 斬刑에 처하도록 정해놓고 있었다. 이에 “지금은 도망가도 죽고 거사를 도모해도 죽을 것이니, 이러나저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옳다.”라고 하고는 都尉를 죽이고 吳廣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진승과 오광은 처음에 진나라 공자 扶蘇와 楚나라 장수 項燕으로 가장하여 민심을 얻고, 大楚라는 구호를 내걸어 세력을 키웠다. 얼마 후에 진승이 초나라 왕에 올라 국호를 張楚라고 하였으나, 6개월 만에 진나라 장군 章邯에게 패하고, 그의 御者 莊賈에게 살해되었다. 그러나 그의 봉기를 계기로 각처에서 봉기하여 진나라는 멸망하기 시작하였다.(≪史記≫ 권48 〈陳涉世家〉)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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