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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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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王이니 文王次子也 性慈和하고 有聖德이라 文王以爲世子하니라
武王率文王事季歷之道而行之하야 文王有疾 武王不脫冠帶而養하야 文王一飯이어든 亦一飯하고 文王再飯이어든 亦再飯이라
武王旣立 以太公望爲師하고 周公旦爲輔하고 召公奭畢公高之徒 皆左右武王하야 率修太王緖業하니라
時商紂無道어늘 武王東觀兵하야 至于孟津하니 諸侯不期而會者八百이라
皆曰 紂可伐矣한대 武王曰 汝未知天命이라 未可也라하고 乃還師歸하다
居二年 紂暴虐滋甚이어늘 遂伐之하야 一戎衣而天下大定하니 乃反商政하야 政由舊하다
釋箕子囚하고 封比干墓하고 式商容閭하고 散鹿臺之財하고 發鉅橋之粟하야 大賚于四海하니 而萬姓悅服이라
天下之人 以爲王之於仁賢也 死者猶封其墓어든 況生者乎 亡者猶表其閭어든 況存者乎 王之於財也 聚者猶散之어든 肯復籍乎 王之於色也 在者猶歸其父母어든 肯復徵乎아하더라


5-2-1 무왕의 이름은 이니 문왕文王의 둘째 아들이다. 성품이 자애롭고 온화하고 성인聖人의 덕이 있어 문왕이 그를 세자世子로 삼았다.
武王武王
무왕은 문왕이 계력季歷을 섬기던 도리를 따라서 행하여 문왕이 병이 나자 무왕이 밤에도 관대冠帶를 벗지 않고 봉양하여 문왕이 한 번 먹으면 자기도 한 번 먹고, 문왕이 두 번 먹으면 자기도 두 번 먹었다.
무왕이 즉위하고 나서 태공망太公望로 삼고, 주공周公 로 삼았고, 소공召公 필공畢公 의 무리가 모두 무왕을 보좌하여 태왕太王기업基業을 계승하여 다스렸다.
이때 나라 무도無道하므로 무왕이 동쪽으로 가서 열병閱兵하여 맹진孟津에 이르니 사전에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모인 제후가 800명이었다.
모두들 주를 정벌해야 한다고 하니, 무왕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니 불가하다.”라고 하고 군대를 돌려서 돌아갔다.
2년이 지났는데 주의 포학이 더욱 심해지자 마침내 주를 정벌하였는데, 한 번 갑옷을 입고 정벌하여 천하가 크게 안정되니 나라의 정치를 바꾸어 옛날의 정치를 따랐다.
천하 사람들이 말하기를, “왕이 인현仁賢에 대해 죽은 자도 오히려 그 무덤을 봉분해주는데, 하물며 산 자이겠는가. 죽은 자도 오히려 그 마을에 정표旌表를 해주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자이겠는가. 왕이 재물에 있어 모아놓은 것도 오히려 흩어주는데 다시 거두려고 하겠는가. 왕이 여색女色에 대해 있는 자도 오히려 그 부모에게 돌려보내는데 다시 징발하려고 하겠는가.” 하였다.


역주
역주1 갇혀……베푸니 : 기자는 은나라 紂의 叔父이고, 비간은 주의 庶兄이며, 상용은 은나라의 어진 사람이었다. 주가 무도하자 기자와 비간이 간하였는데 기자는 갇히고 비간은 죽임을 당하였다. 녹대는 주가 財貨를 쌓아둔 창고이고, 鉅橋는 주가 곡식을 쌓아둔 창고이다.(≪書經≫ 〈周書 武成〉․≪史記≫ 권4 〈周本紀〉)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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