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禧元年二月에 詔別置諫官御史各六員하야 增其月俸하야 不兼他職하고 每月須一員奏事하고 或有急務면 聽非時入對하고 及三年에 絀其不勝任者하다
先是에 帝謂宰相曰 朕以去秋螟蝗으로 因自省호니 天下至廣하니 豈民政有闕邪아 比聞外廷浮議 謂朝廷鮮納諫諍이라하니 殊不知群臣言事에 朕每虛懷聽受하고 苟有可採면 隨卽施行하니 蓋中外之人이 猶未深悉耳라
且朝士中固多才識하고 近覽賦頌之作하니 尤覺文風丕變이라 直言讜論이 豈無其人이리오 當下詔別置臺省官하야 專主諫奏나 然所選猶須謹厚端雅識大體者니 至於比周浮薄은 朕不取焉이라
王
等曰 陛下聖政日懋
하시고 多士如林
호되 尙復孜孜詢求
하사 如恐不及
하시니 必有奇才 上副推擇
하리이다
천희天禧 원년(1017) 2월에 조서를 내려 간관과 어사 각 6명을 특별히 두어서 그 월봉月俸을 높여주고 다른 직책을 겸하지 않게 하고, 매월 반드시 한 명이 일을 아뢰고 혹 급한 일이 있으면 불시不時에 입대入對하도록 허락하였으며, 3년이 되면 직책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축출하였다.
그전에 진종이 재상에게 이르기를, “짐이 작년 가을 메뚜기 떼의 재해로 인하여 스스로 반성하였으니, 천하는 지극히 넓지만 정사에 어찌 빠진 것이 있겠는가. 근자에 외정外廷에서 근거 없이 떠도는 의론을 들으니, ‘조정에서 간쟁을 받아들이는 것이 적다.’라고 하는데, 신하들이 일을 말할 때에 짐이 매번 마음을 비우고서 받아들이고 채납할 만한 것이 있으면 즉시 시행한다는 것을 전혀 몰라서 그런 것이다. 이는 중외中外의 사람들이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정의 관원 중에 재능과 식견이 있는 사람이 참으로 많고, 근자에 부賦와 송頌을 지은 것을 보니 문풍文風이 크게 변했음을 더욱 알 수 있었다. 곧은 말과 바른 논의를 하는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의당 조서를 내려 대성관臺省官을 특별히 두어 간주諫奏를 전담하게 해야 하지만 뽑은 사람은 근후謹厚하고 단아하며 대체大體를 아는 사람이어야 하니, 사사로이 당파를 만들거나 경박한 사람은 짐이 뽑지 않을 것이다.” 하니,
왕단王旦 등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거룩한 정사에 날로 힘쓰시고 훌륭한 선비가 숲처럼 많은데도 오히려 또 부지런히 묻고 찾으시어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시니, 반드시 뛰어난 인재가 있어서 성상의 선발에 부응할 것입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