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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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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4
始皇 以咸陽人多하고 先王宮廷小라하야 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할새 先作前殿阿房하니 東西五百步 南北五十丈이라 上可以坐萬人이요 下可以建五丈旗러라
周馳爲閣道하야 自殿下直抵南山하고 表南山之顚하야 以爲闕하고 爲複道하야 自阿房度渭하야 屬之咸陽하야 以象天極閣道絶漢抵營室也러라
隱宮徒刑者七十餘萬人으로 乃分作阿房宮하고 或作驪山하고 發北山石槨하고 寫蜀荊地材하야 皆至하니
關中 計宮三百이요 關外 四百餘러라 於是 立石東海上胊界中하야 以爲秦東門하고 因徙三萬家驪邑하고 五萬家雲陽하다


37-1-4
시황제가 함양咸陽은 사람이 많고 선왕의 궁정宮廷이 작다고 하여 위수渭水 남쪽 상림원上林苑 안에 조궁朝宮을 지을 때에 먼저 아방阿房전전前殿을 지었는데, 동서東西 길이가 500이고 남북南北 길이가 50이었다. 위에는 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5 높이의 를 세울 수 있었다.
전전前殿 둘레 사방의 길을 로 만들었는데, 殿의 아래로부터 곧바로 남산南山에 이르고, 남산 꼭대기에 를 세워 문궐門闕로 삼았다. 또
궁형宮刑을 받은 자와 도형徒刑을 받은 자 70여만 명을 나누어 일부는 아방궁을 짓고 일부는 을 만들었는데, 북산北山석재石材를 캐오고 땅의 목재를 수송하여 모두 가져왔다.
이에 동해東海구현胊縣의 경계 가운데에 석비石碑를 세워서 나라의 동문東門으로 삼고,
대영궁실大營宮室대영궁실大營宮室


역주
역주1 閣道 : 지상에 橋脚을 세우고 그 위에 棧道처럼 낸 길이다.
역주2 複道를……상징하였다 : 複道는 閣道와 같은 말이다. 天極은 北極星이다. 天極은 天帝의 거처인 紫宮에 포함되어 있는데, 紫宮 왼쪽의 세 별을 天槍이라고 하고, 오른쪽의 다섯 별을 天棓라고 하고, 뒤에 있는 여섯 별이 은하수를 가로질러 營室星에 이른 것을 閣道라고 하는데, 前殿에서 渭水를 건너 咸陽에 이른 複道를 낸 것이 바로 天文의 閣道를 상징했다는 말이다.(≪史記索隱≫ 권2 〈秦本紀〉, ≪史記≫ 권27 〈天官書〉)
역주3 驪山 : 시황제의 무덤을 가리킨다.(≪史纂通要≫ 권6 〈秦〉)
역주4 關中에……채였다 : 시황제의 사치를 말한 것이다. 關中은 函谷關 안쪽이라는 뜻으로, 동쪽으로는 함곡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隴關에 이르는데 두 關의 사이를 관중이라고 하고, 關外는 함곡관 동쪽으로 지난날 六國의 땅을 가리킨다.(≪太平御覽≫ 권164 〈州郡部10 闗西道 雍州〉)
역주5 3만……이주시키고 : 시황제의 무덤을 조성한 驪山 주위에 백성을 이주시켜서 이 지역이 사람이 없는 쓸쓸한 땅이 되지 않게 했다는 말이다.(≪史記≫ 〈秦始皇本紀〉(全本全注全譯叢書, 中華書局))
역주6 5만……이주시켰다 : 雲陽은 陝西省 淳化縣 서북쪽에 있던 縣 이름이다. 그 서쪽에 甘泉山이 있는데 이곳에 시황제가 甘泉宮을 짓고 백성을 이주시켜 시황제가 생전에 이곳에서 놀며 즐길 때에 쓸쓸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다.(≪史記≫ 〈秦始皇本紀〉(全本全注全譯叢書, 中華書局))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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