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皇이 以咸陽人多하고 先王宮廷小라하야 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할새 先作前殿阿房하니 東西五百步요 南北五十丈이라 上可以坐萬人이요 下可以建五丈旗러라
周馳爲閣道하야 自殿下直抵南山하고 表南山之顚하야 以爲闕하고 爲複道하야 自阿房度渭하야 屬之咸陽하야 以象天極閣道絶漢抵營室也러라
隱宮徒刑者七十餘萬人으로 乃分作阿房宮하고 或作驪山하고 發北山石槨하고 寫蜀荊地材하야 皆至하니
關中에 計宮三百이요 關外에 四百餘러라 於是에 立石東海上胊界中하야 以爲秦東門하고 因徙三萬家驪邑하고 五萬家雲陽하다
시황제가 함양咸陽은 사람이 많고 선왕의 궁정宮廷이 작다고 하여 위수渭水 남쪽 상림원上林苑 안에 조궁朝宮을 지을 때에 먼저 아방阿房에 전전前殿을 지었는데, 동서東西 길이가 500보步이고 남북南北 길이가 50장丈이었다. 위에는 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5장丈 높이의 기旗를 세울 수 있었다.
전전前殿 둘레 사방의 길을
로 만들었는데,
전殿의 아래로부터 곧바로
남산南山에 이르고, 남산 꼭대기에
표表를 세워
문궐門闕로 삼았다. 또
궁형宮刑을 받은 자와
도형徒刑을 받은 자 70여만 명을 나누어 일부는 아방궁을 짓고 일부는
을 만들었는데,
북산北山의
석재石材를 캐오고
촉蜀과
형荊 땅의 목재를 수송하여 모두 가져왔다.
이에
동해東海 가
구현胊縣의 경계 가운데에
석비石碑를 세워서
진秦나라의
동문東門으로 삼고,
대영궁실大營宮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