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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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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군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上嘗與群臣으로 語及敎化曰 今承大亂之後하니 恐斯民未易化也
魏徵對曰 不然이라 久安之民 驕佚이니 驕佚則難敎 經亂之民 愁苦 愁苦則易化 譬猶飢渴之易飮食也니이다
上深然之한대 封德彜非之曰 三代以還으로 人漸澆訛 故秦任法律하고 漢雜霸道하니 蓋欲化而不能이니 豈能之而不欲邪 魏徵書生이라 未識時務하니 若信其虛論이면 必敗國家니이다
徵曰 五帝三王 不易民而化하고 湯武 皆承大亂之後하야 身致太平이라 若謂古人淳樸이라가 漸致澆訛 則至于今日 當悉化爲鬼魅矣 人主安得而治之리오 上卒從徵言하다
元年 關中饑하야 米斗 直絹一匹이요 二年 天下蝗하고 三年 大水어늘 上勤而撫之 民雖東西就食이나 未嘗嗟怨이러니
是歲 天下大稔하야 流散者咸歸鄕里하고 米斗不過三四錢이요 終歲 斷死刑 纔二十九人이요
東至于海하고 南及五嶺 皆外戶不閉하며 行旅不齎糧하고 取給道路焉이라
上謂長孫無忌曰 貞觀初 上書者皆云 人主當獨運威權하야 征討四夷라호되 唯魏徵勸朕하야 偃武修文하야 中國旣安이면 四夷自服이라하니 朕用其言이러니
今頡利成擒 其酋長竝帶刀宿衛하고 部落皆襲衣冠하니 徵之力也
但恨不使封德彜見之耳로다
時德彜已死하니라


16-1-28 이 일찍이 신하들과 이야기하다가 교화敎化에 대해 언급하고 이르기를, “지금은 큰 난리를 겪은 후이니, 백성들이 쉽게 교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니,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편안한 백성은 교만하고 방탕하니 교만하고 방탕한 백성은 교화하기 어렵고, 난리를 겪은 백성은 근심하고 괴로워하니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백성은 교화하기 쉽습니다. 비유하자면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먹이기 쉽고 목마른 자에게 음료를 마시게 하기 쉬운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이 매우 옳은 말이라고 여겼는데, 봉덕이封德彛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삼대三代 이후로 사람들이 점점 경박해지고 속임수를 쓰게 되었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법률에 맡겼고 나라에서는 패도霸道를 섞어 썼으니, 대개 교화시키고자 하였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찌 할 수 있는데도 하고자 하지 않았겠습니까. 위징은 서생書生이라서 시무時務를 알지 못하니, 만약 그의 헛된 의론을 믿으신다면 반드시 국가가 무너질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위징이 말하기를 “은 백성을 바꾸지 않고도 교화하였고 은 모두 큰 난리를 겪은 후에 직접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만일 옛사람은 순박淳樸했는데 점점 경박해지고 속이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오늘에 이르러서는 모두 변화하여 귀신과 도깨비가 되었어야 할 것이니, 군주君主가 어떻게 이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 끝내 위징의 말을 따랐다.
정관貞觀 원년(627)에는 관중關中에 기근이 들어 쌀 한 말 값이 비단 한 필이었고 2년에는 천하天下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고 3년에는 홍수가 있었는데, 이 부지런히 위무慰撫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비록 동쪽과 서쪽으로 가서 먹으면서도 일찍이 한탄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해에는 천하에 크게 풍년이 들어 뿔뿔이 흩어졌던 백성들이 모두 향리鄕里로 돌아오고 쌀 한 말 값이 3, 4에 불과하였으며, 일 년이 다하도록 사형死刑으로 판결한 죄인이 겨우 29명뿐이었다.
또 동쪽으로 동해東海에 이르고 남쪽으로 오령五嶺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깥문을 닫지 않았고, 여행자들은 양식을 가져가지 않아도 가는 길에 넉넉히 구할 수 있었다.
장손무기長孫無忌에게 이르기를 “정관貞觀 초기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군주君主는 마땅히 홀로 위무威武와 권력을 운용하여 사방 오랑캐를 정벌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지만, 오직 위징만은 에게 권하여 ‘무위武威를 그만두고 문덕文德을 닦아서 중국이 안정되면 사방 오랑캐가 저절로 복종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은 그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 지금 을 사로잡자 그의 추장酋長들이 모두 칼을 차고 숙위宿衛하며 부락部落이 모두 중국中國의관衣冠을 따르고 있으니, 이는 위징의 힘이다.
다만 봉덕이에게 이것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하였다.
당시 봉덕이는 이미 죽었다.


역주
역주1 五帝 : 상고시대의 훌륭한 군주로 보통 三皇과 함께 일컬어지는데, 삼황은 伏羲․神農․黃帝를 말하고, 五帝는 少昊․顓頊․帝嚳․帝堯․帝舜을 말한다.
역주2 三王 : 상고시대의 夏나라, 商나라, 周나라의 어진 임금을 말하는데, 夏의 禹王, 商의 湯王, 周의 文王과 武王을 가리킨다.
역주3 湯王과 武王 : 湯王은 夏나라 말기에 무도한 桀王을 정벌하고 난세를 평정하여 殷나라를 창건하였고, 武王은 은나라 말기에 무도한 紂王을 정벌하고 난세를 평정하여 周나라를 창건하였다.
역주4 頡利可汗 : 突厥의 可汗이다. 620년 형을 이어 즉위한 이후 여러 차례 군대를 이끌고 唐나라에 대한 침략을 감행하였고, 629년 태종의 사위가 되어 예를 갖추었으나 그 후로도 해마다 당나라를 침략하였다. 태종이 정벌에 나서 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로잡아 돌아와서 右衛大將軍으로 삼았다.(≪舊唐書≫ 권2 〈太宗本紀 上〉, 권3 〈太宗本紀 下〉)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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