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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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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7
○淮西行營奏獲吳元濟하니 光祿少卿楊元卿言於上曰 淮西大有珍寶하니 臣能知之 往取必得이니이다 上曰 朕討淮西 爲人除害 珍寶非所求也니라
唐隋鄧節度使李愬擒吳元濟하야 械送京師하니 詔韓弘裴度하야 條列平蔡將士功狀及蔡之將士降者하야 皆差第以聞하고 淮西州縣百姓 給復二年하고 近賊四州 免來年夏稅하고 官軍戰亡者 皆爲收塟하고 給其家衣糧五年하고 其因戰傷殘廢者 勿停衣糧하고
上御興安門受俘하고 遂以吳元濟獻廟社하고 斬于獨柳之下하다 以李愬爲山南東道節度使하고 賜爵涼國公하고 加韓弘兼侍中하고 李光顔等遷官有差하고 賜裴度爵晉國公하야 復入知政事하고 以馬總爲淮西節度使하다


17-1-17
회서淮西행영行營에서 오원제吳元濟를 잡았다고 아뢰니, 광록소경光祿少卿 이 헌종에게 말하기를, “회서에 진보珍寶가 많이 있으니 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가서 취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니, 헌종이 이르기를, “짐이 회서를 토벌한 것은 백성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진보는 내가 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나라 수등절도사隋鄧節度使 가 오원제를 사로잡아 형구를 채워 경사로 압송하니, 배도裴度에게 명하여 채주蔡州를 평정한 장사將士들의 공상功狀 및 채주의 항복한 장사들을 조목별로 나열하여 모두 차등을 두어 아뢰고, 회서의 주현州縣의 백성들에게는 2년간 급복給復하고, 적도들과 가까운 4는 내년의 하세夏稅를 면제하고, 관군官軍으로서 전사한 자는 모두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그 집에 5년간 의복과 식량을 지급하고, 전쟁으로 인하여 부상당하여 폐인이 된 자는 의복과 식량을 지급하는 것을 정지하지 말라고 하였다.
헌종이 흥안문興安門에 임어하여 전쟁에서 잡은 포로를 받는 의식을 행하고, 마침내 오원제를 종묘에 바치고 아래에서 참수하였다. 이소를 산남동도절도사山南東道節度使로 삼고 양국공涼國公의 작위를 내리고, 한홍에게는 시중侍中을 겸직하게 하고, 이광안 등은 차등을 두어 관직을 옮겨주었으며, 배도에게 진국공晉國公의 작위를 내리고 다시 조정에 들어와 정사政事를 맡게 하고, 마총은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로 삼았다.


역주
역주1 楊元卿 : 764~833. 吳元濟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蔡州의 虛實을 憲宗에게 진달하였기 때문에 처와 네 아들이 오원제에게 살해되었다. 헌종 때에 光祿少卿에 제수되고, 穆宗 때에 涇原渭節度觀察使에 제수되었다가 河陽三城節度觀察使로 옮겼고 이어 檢校司空에 제수되었고, 太子太保로 벼슬을 마쳤다.
역주2 李愬 : 773~821. 唐나라 隴右 臨洮 사람으로, 자는 元直이며, 책략에 밝고 활을 잘 쏘았다. 唐 憲宗 때 蔡州刺史 吳元濟가 반란을 일으켜 3년이 되도록 평정되지 않자, 조정에서 裴度를 淮西招討使로 삼아 토벌케 하였는데, 隋鄧節度使 이소가 오원제를 사로잡아 난이 평정되었다. 그 공으로 檢校尙書左僕射 겸 楊州刺史에 제수되고 涼國公에 봉해졌다. 후에 李師道를 격파하고 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고 太子少保에까지 이르렀다.
역주3 韓弘 : 765~823. 唐나라 潁川 사람이다. 憲宗이 淮西의 吳元濟의 난을 정벌할 때 諸軍行營都統使가 되어 군대를 통솔하였고, 회서가 평정된 뒤에 그 공으로 侍中이 되고 許國公에 봉해졌다. 李師道가 주벌된 뒤에 司徒 中書令이 되었고, 헌종이 죽었을 때 冢宰의 일을 攝行하였다. 시호는 隐이다.
역주4 獨柳 : 唐나라 때 역적을 참수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長安子城 興安門 서남쪽에 있다. 肅宗 때에도 “달해순 등을 자성 서남쪽 모퉁이 독류수에서 참하였는데, 백료를 모아 가서 구경하였다.[斬達奚珣等於子城西南隅獨柳樹 仍集百僚往觀之]”라는 기록이 있다.(≪資治通鑑≫ 권220 〈唐紀〉)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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