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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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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44
○二十七年이라 以襄城令趙渢爲應奉翰林文字한대 渢入謝하니 金主謂宰臣曰 此党懷英所薦邪 對曰 諫議黃久約亦甞薦之니이다 曰 學士院 比舊殊無人材하니 何也
右丞張汝霖曰 人材 須作養이니 若令久任練習이면 自可得人이니이다


27-1-44
대정大定 27년(1187)에 양성령襄城令 응봉한림문자應奉翰林文字로 삼았는데, 조풍이 들어가 사례하니, 세종이 재신宰臣들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이 천거하였는가?” 하였다. 대답하기를 “간의諫議 또한 일찍이 천거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니, 세종이 이르기를, “학사원學士院에 옛날에 비해 자못 인재가 없으니 무엇 때문인가?” 하였다.
우승右丞 이 대답하기를 “인재는 모름지기 양성해야 하니, 만일 구임久任시켜서 연습하게 하면 절로 인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趙渢 : 金나라 東平 사람으로 자는 文孺, 호는 黃山이다. 大定年間에 진사가 되었고 禮部郞中, 應奉翰林文字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党懷英과 함께 趙党이라 병칭될 정도로 書法에 뛰어났다. 문집에 ≪黃山集≫이 있었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역주2 党懷英 : 1134~1211. 金나라 馮翊 사람으로 자는 世傑, 호는 竹溪이다. 아버지를 따라 泰安으로 옮겼는데, 어릴 때부터 辛棄疾과 함께 辛党이라 병칭되었다. 大定 10년(1170)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세종 때 國史院編修官․應奉翰林文字․翰林待詔․同修國史로 누차 승진하고, 明昌 3년(1192)에 翰林學士承旨에 올랐다. 서예와 전각에 능했다. 문집으로 ≪小州集≫이 있다.
역주3 黃久約 : 金나라 東平 須城 사람으로 자는 彌大이다. 文詞가 典雅하였다. 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曹州軍事判官, 兼翰林修撰, 待制 등을 거쳐 磁州刺史가 되고, 翰林直學士, 左諫議大夫, 禮部侍郞 등을 역임하였다. 章宗이 즉위하였을 때 國富民貧, 本輕末重, 任人太雜, 吏權太重, 官鹽價高, 坊場害民, 與夫選左右, 擇守令八事 등의 내용을 올려 모두 嘉納되었다.
역주4 張汝霖 : ?~1190. 遼陽 사람으로 자는 仲澤이다. 金나라 開國元勳 張浩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장호가 “우리 집안의 천리마이다.”라고 칭찬하였다. 貞元 2년(1154)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翰林待制, 刑部侍郎, 中都路都運使, 御史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大定 8년(1168)에 刑部員外郎中에 제수되었다. 후에 平章政事로 승진하고 芮國公에 봉해졌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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