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而神靈하고 弱而能言하며 幼而徇齊하고 長而敦敏하며 成而聰明이라
神農氏世衰에 諸侯相侵伐하고 暴虐百姓이어늘 軒轅乃習用干戈하야 以征不享하니 諸侯咸來賓從이라
蚩尤最爲暴어늘 軒轅征之할새 値天霧晦冥하야 軍行迷라 乃作指南車하야 進擊蚩尤于涿鹿之野하야 擒而戮之中冀하고 徙其徒於有北하고 天下有不道者 從而征之라
凡五十三征하야 奄有中區하니 東至于海하며 西至崆峒하며 南至于江하며 北逐葷粥이라
合符釡山하고 都于有熊이라 作布政之所曰合宮이요 又曰明庭이라
有風后天老五聖知命窺紀地典力牧七聖爲之輔하고 又有常先大鴻容光三臣爲之佐라 置三公之職하야 以象三台하고 置左右大監하야 監于萬國이라
命大撓氏正甲子하고 羲和氏占日하고 常儀氏占月하고 臾區氏占星하고 隷首氏理算數하고 伶倫氏榮猨氏正律呂하야 各盡其方하니 於是에 容成氏綜六術而著調歷焉이라
帝乃考定星歷하고 建立五行하고 起消息하고 正閏餘라
於是에 有天地神祇物類之官하니 是謂五官이라 各司其序하야 不相亂也라
民是以能有信하며 神是以能有明德하야 民神異業하야 敬而不瀆하니 故神降之嘉生하야 民以物享하며 災禍不生하며 所求不匱라
旁行天下하야 方制萬里하고 畫埜分州하야 得百里之國萬區라 以分星次하고 經土設井하야 以塞爭端하고 立步制畝하야 以防不足이라
八家爲井하야 井開四道하고 而分八宅하야 使民存亡更守하며 出入相司하며 嫁娶相媒하며 有無相貸하며 疾病相救라
上古에 牛未穿馬未絡이러니 至是에 服牛乘馬하야 引重致遠하야 而民力有裕라
上古에 山無蹊澤無梁이러니 至是에 披山林梁川澤하며 造舟車하야 而險阻通이라
上古에 居于穴棲于木이러니 至是에 營宮室制戶牖하야 而猛暴禁이라
作杵臼而穀粟始糳하며 作釜而民始粥하며 作甑而民始飯이라
行有屨履하며 死有棺槨하며 成城築邑하고 重門擊柝하야 以待暴客이라
弦木爲弧하며 剡木爲矢하야 習熊虎貔貅之士하야 以威天下라
制軒冕垂旒充纊하며 玄衣黃裳하며 畵繢五色爲文章하야 以別貴賤이라
1-3-1
황제黃帝는
의 아들이니
성姓은
공손公孫이고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黃帝
태어나면서부터 신령스러웠고,
때부터 능히 말을 하였으며,
독실하고 민첩하였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총명하였다.
신농씨神農氏의 시대가 쇠약해져서 제후들이 서로 침범하고 백성들을 포학하게 대하자 헌원씨가 창과 방패 쓰는 것을 익혀서 와서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는 자를 정벌하니 제후들이 모두 와서 복종하였다.
그중에
치우蚩尤가 가장 포학하였는데 헌원씨가 정벌할 때에 마침 안개가 끼어서 어두워 군대가 길을 찾지 못하자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어서 나아가
탁록涿鹿의 들에서 치우를 격파하고 잡아서
에서 죽이고 그 무리를
으로 이주시키고, 천하에
들을 정벌하였다.
53차례 정벌하여 온 세상을 차지하니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공동崆峒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장강長江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을 축출하였다.
에 도읍하였다.
정사政事를 보는 곳을
합궁合宮이라고 하고 또
명정明庭이라고 하였다.
풍후風后와
천로天老와
오성五聖과
지명知命과
궁기窺紀와
지전地典과
역목力牧 7명의 성인을
보輔로 삼고, 또
상선常先과
대홍大鴻과
용광容光 세 신하를
좌佐로 삼았다.
삼공三公의
직職을 두어
를 상징하고, 좌우
대감大監을 두어
만국萬國을 감독하였다.
대요씨大撓氏에게 명하여
갑자甲子를 정하게 하고,
희화씨羲和氏에게 명하여 날[
일日]을 점치게 하고,
상의씨常儀氏에게 명하여 달[
월月]을 점치게 하고,
유구씨臾區氏에게 명하여 별[
성星]을 점치게 하고,
예수씨隷首氏에게 명하여
산수算數를 다루게 하고,
영륜씨伶倫氏와
영원씨榮猨氏에게 명하여
율려律呂를 바르게 하여 각각 그 방면에 힘을 다하게 하니, 이때에
용성씨容成氏가 여섯 가지
술術을 총괄하여
을 지었다.
황제가
을 살펴서 정하고
오행五行을
건립建立하고,
을 일으키고,
를 바르게 하였다.
이때에
각각 그 계절을 맡아서 서로 어지럽지 않았다.
백성은 이 때문에 능히 믿음이 있었고, 신神은 이 때문에 능히 덕을 밝혀서 사람과 신이 맡은 일을 달리하여 공경하되 더럽히지 않으니, 이 때문에 신이 좋은 곡식을 내려주어 백성이 순종하고 복을 누리며, 재해災害가 발생하지 않으며,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부족하지 않았다.
천하를 두루 다녀서 1만
리里의 땅에 처음으로
강역疆域을
제정制定하고,
전야田野를 경계 긋고
주州를 나누어서 100
리里가 되는 나라 1만 곳을 얻어서
를 나누고,
전지田地에
정井자로 구획을 그어서 분쟁의 단서를 막고,
부족함을 막았다.
8가家를 정井으로 하여 정井에 4개의 길을 내서 여덟 집을 나누어 백성들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로 지켜주고, 나가고 들어올 때 서로 살피며, 시집보내고 장가보낼 때 서로 중매仲媒하며, 재물이 있고 없을 때에 서로 빌려주며, 질병이 있을 때에 서로 돌봐주게 하였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소에 코뚜레를 뚫지 않고 말에 고삐를 매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운 짐을 옮기고 먼 길을 갈 수 있게 되어 백성들의 힘에 여유가 있게 되었다.
상고시대에는 산에 길이 없고 강에 다리가 없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산림을 뚫어 길을 내고 강에 다리를 놓으며 배와 수레를 만들어서 험한 곳을 교통하게 되었다.
상고시대에는 굴에 살고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집을 짓고 문을 내서 맹수를 막았다.
절굿공이와 절구를 만들어 곡식을 처음으로 찧었고, 솥을 만들어 백성들이 처음으로 죽을 끓여 먹었으며, 시루를 만들어 백성들이 처음으로 밥을 지어 먹었다.
길을 갈 때에는 신발을 신었고, 죽은 이를 장사 지낼 때에 관곽棺槨을 사용하였으며, 성城을 쌓아고 읍邑을 만들고 문門을 이중으로 만들고 순라를 돌아서 도둑을 대비하였다.
나무를 휘어서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서 화살을 만들어 곰과 호랑이와 비휴貔貅(비휴) 같은 용맹한 군대를 조련하여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
수레와 면복冕服의 제도를 만들고 면류관冕旒冠을 쓰고 면류관 양쪽에 귀마개[광纊]를 장식으로 달며, 검은색 상의에 누런색 하의를 입으며, 다섯 가지 색으로 옷에 그림을 그려 문장文章을 만들어서 귀천貴賤을 구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