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政元年夏五月에 殂하니 在位十八年이요 享年三十六이라 周主沈毅有智謀라
初以宇文護專權으로 常自晦迹하니 人莫測其深淺이러니
及誅護之後에 始親萬機한대 克己勵精하야 聽覽不怠하고 號令懇惻하야 惟屬意於政하니 群下畏服하야 莫不肅然이러라
凡布懷立行에 皆欲踰越古人하니 身衣布袍하고 寢布被하야 無金寶之飾하고 諸殿華綺者를 皆撤毁之하야 改爲土階數尺하고 不施櫨栱하며 其雕文刻鏤錦繡纂組는 一皆焚斷하고 後宮嬪御不過十餘人이라
勞謙接下하야 自彊不息하고 以海內未康으로 銳情敎習하야 至於校兵閱武하고 步行山谷하니 履涉勤苦는 皆人所不堪이라
平齊之役에 見軍士有跣行者면 嘗親脫靴以賜之하고 每宴會將士에 必自執盃勸酒하고 或手付賜物하며 至於征伐之處하얀 躬在行陣이라
性又果決하야 能斷大事라 故能得士卒死力하야 以弱制彊이라
破齊之後에 遂平突厥하고 定江南하야 一二年間에 必使天下一統하니 此其志也니라
15-2-16 선정宣政 원년(578) 여름 5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재위 기간이 18년이었고 향년享年이 36세였다. 주주周主는 성품이 침착하고 굳세며 지모智謀가 있었다.
처음에 우문호宇文護가 권력을 전횡專橫하였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자취를 숨겼으니, 사람들이 아무도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우문호를 주벌誅罰한 뒤에 비로소 직접 만기萬機를 다스렸는데, 사욕을 억제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정사政事에 게으르지 않으며 명령이 정성스럽고 간절하여 오직 정사에 뜻을 쏟으니, 아랫사람들이 외복畏服하여 숙연한 자세로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무릇 회포를 펴고 행실을 수립함에 모두 고인古人을 뛰어넘고자 하였으니, 몸에는 베옷을 입고 잘 때에는 베 이불을 덮어서 금보金寶의 장식을 하지 않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러 전각을 모두 철거하여 토계土階 수척數尺으로 고치고 노공櫨栱을 배설排設하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조각과 수놓은 비단은 일체 모두 불태우고 금지하였으며, 후궁後宮과 빈어嬪御는 10여 인人에 불과하였다.
으로 아랫사람을 대하여
해내海內가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일한 마음으로
교습敎習하여 병사들을
교열校閱하고
산곡山谷을 걸어 다니기까지 하였으니,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과 고통은 모두 남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북제北齊를 평정平定하는 전역戰役에서는 맨발로 행진하는 군사를 보면 직접 가죽신을 벗어주었고, 장사將士들에게 연회를 베풀 때마다 반드시 스스로 술잔을 잡고 술을 권하고 혹 손 가는 대로 물건을 집어주기도 하였으며, 정벌征伐한 곳에 이르렀을 때는 직접 행진行陣에 참여하였다.
성품이 또한 과감하여 큰일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능히 사졸들에게 죽을힘을 다하게 할 수 있어서 약한 병력으로 강한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북제를 격파한 뒤에는 마침내 돌궐突厥과 강남江南을 평정하여 1, 2년 사이에 반드시 천하가 통일되게 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무제의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