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七年에 魏徵疾甚한대 家初無正寢이라 上命輟小殿材하야 爲營構한대 五日에 畢하니 幷賜素褥布被하야 以從其尙이러니
及薨에 詔陪葬昭陵하고 上登苑西樓하야 望哭盡哀하다
後臨朝 歎曰 以銅爲鑑이면 可正衣冠이요 以古爲鑑이면 可知興替요 以人爲鑑이면 可明得失이라
朕嘗保此三鑑하야 以防己過러니 今魏徵逝하니 一鑑亡矣라
16-1-48 정관貞觀 17년(643)에 위징魏徵의 병이 깊어졌는데, 집에 처음부터 정침正寢이 없었다. 이에 상上이 작은 전각殿閣을 철거하고 그 재목을 가져다 정침正寢을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5일 만에 역사役事를 마치니 아울러 흰 요와 베 이불을 하사하여 평소 소박하게 살고자 했던 그의 뜻을 존중하였다.
그러다가 위징이 죽었을 때는 조서를 내려 소릉昭陵에 배장陪葬하게 하고, 상上이 궁원宮苑의 서루西樓에 올라 무덤을 바라보고 곡哭하며 슬픔을 다하였다.
뒤에 조정에 임하여 탄식하기를,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衣冠을 단정하게 바로잡을 수 있고, 옛 역사로 거울을 삼으면 국가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고,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자신의 득실得失을 알 수 있다.
짐朕은 일찍이 이 세 개의 거울을 보전하여 안으로 자신의 허물을 방지했었는데,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짐은 거울 하나를 잃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