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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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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4
○七月 陝西興平鳳翔二縣 進瑞麥三十本이어늘 禮部率群臣上表賀하야 以爲聖德覆被之應이요 天下太平之徵이라한대
上覽之하고 謂尙書李至剛侍郞趙羾曰 瑞麥 固是嘉應이나 但四方遠邇 靡一物不得其所라야 斯可爲太平이니 今中外果無匹夫匹婦之愁怨於下者乎 覽表 秪益慚愧耳
君臣貴相與以誠이요 諛佞非治世之風也니라 至剛等 愧謝하다


32-1-4
7월에 섬서陜西흥평興平봉상鳳翔이 상서로운 보리 30을 진상하자 예부禮部가 신하들을 거느리고 표문表文을 올려 하례하면서 성덕聖德이 온 세상을 덮은 데 대한 보응報應이고 천하가 태평해질 징조라고 하였다.
태종이 표문을 보고서 상서尙書 시랑侍郞 에게 이르기를, “상서로운 보리가 참으로 좋은 보응이기는 하지만 사방의 원근遠近에 한 사람도 안주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어야 이것이 태평이 될 수 있다. 지금 중외中外에 과연 아래에서 근심하고 원망하는 필부필부匹夫匹婦가 없는가? 표문을 보니 더욱 부끄러울 뿐이다.
임금과 신하는 서로 정성으로 어울리는 것이 귀하고, 아첨하는 것은 치세治世의 기풍이 아니다.” 하니, 이지강 등이 부끄러워 사죄하였다.


역주
역주1 李至剛 : 明나라 松江 華亭 사람으로, 이름은 鋼인데 자로 행세하였다. 洪武 21년(1388)에 明經科에 급제하였다. 태종이 즉위하여 禮部尙書에 올랐고, 황태자가 책봉되자 左春坊大學士를 겸하여 東宮의 講筵을 담당하였다. 仁宗이 즉위하여서는 興化知府로 나갔다가 재임 중에 죽었다.
역주2 趙羾(조공) : 1365∼1436. 明나라 河南 祥符 사람으로, 자는 雲翰이다. 洪武 21년(1388)에 과거에 급제하여 國子監에 들어갔고, 永樂 연간에 安南으로 사신 갔다가 돌아와 刑部右侍郞에 발탁되고 후에 兵部尙書가 되었다.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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