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歷代君鑑(1)

역대군감(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역대군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成王名이니 武王之子也 成王幼 方亮陰이라 周公爲冢宰하야 聽政事어늘 管叔蔡叔霍叔 疑周公하야 流言公將不利於王이라하다
三叔 方監殷이라 遂與武庚及淮夷畔이어늘 周公 居東하고 以王命討平之하다
方流言之初 王亦疑周公이러니 及開金縢 見公請代武王之事하고 乃感泣하야 迎周公歸하야 輔政하다
武王作邑于鎬京하니 謂之宗周 是爲西都 將營成周於洛而未果러니 至是 成王欲成武王之志하야 定鼎於郟鄏하야 使召公先相宅하고
周公繼往營之하야 曰 此天下之中이라 四方入貢 道里均也라하니 是爲東都
王居西都하고 而朝會諸侯於東都하다


5-3-1 성왕의 이름은 이니 무왕의 아들이다. 성왕이 나이가 어린데다 거상居喪하고 있었으므로 주공이 총재冢宰가 되어 정사政事를 다스렸는데, 관숙管叔채숙蔡叔곽숙霍叔이 주공을 의심하여 주공이 장차 왕에게 이롭지 않을 것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成王成王
처음에 무왕이 호경鎬京에 도읍을 건설하고 종주宗周라고 하였으니, 이곳이 서도西都이다. 그 후 낙양洛陽성주成周를 조성하려다 실행하지 못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성왕이 무왕의 뜻을 이루어 겹욕郟鄏(겹욕)에 도읍을 정하려고 소공召公을 시켜 먼저 가서 터를 살피게 하였다.
주공이 뒤이어 가서 도읍을 조성하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천하의 중앙이라 사방에서 공물貢物을 바치러올 때에 거리가 균등하다.” 하였으니, 이곳이 동도東都이다.
왕은 서도에서 지내고 동도에서 제후들을 조회朝會하였다.


역주
역주1 三叔이……평정하였다 : 무왕이 紂를 쳐서 죽이고 주의 아들 武庚에게 주의 뒤를 잇게 하고 나서 무왕의 아들들인 管叔, 蔡叔, 霍叔에게 감독하게 하였는데, 이들을 삼숙이라 한다. 무왕이 죽고 성왕이 어리므로 주공이 冢宰가 되어 攝政하자 관숙이 이에 불만을 품고 무경을 꾀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주공이 成王의 명을 받들어 토벌하여 평정하였다.(≪孟子集註≫ 〈公孫丑 下〉)
역주2 유언비어가……하였다 : 무왕이 商을 정벌하여 이기고 돌아온 지 2년 뒤에 병이 들었는데, 周公이 太王, 王季, 文王에게 자기가 무왕 대신 죽겠다고 고유하고, 그 고유문을 쓴 冊祝을 金縢에 넣어 보관하였다. 管叔의 유언비어가 있자 주공이 교외로 나가 지냈는데, 이때 가을에 큰 바람이 불어 곡식이 모두 쓰러지고 큰 나무가 넘어지는 변고가 있자 성왕이 金縢을 열어서 주공이 무왕 대신 죽겠다고 했던 책축을 보고는 그동안 주공을 의심했던 마음을 풀고 교외에 나가서 주공을 맞이하여 돌아왔다.(≪書傳≫ 〈周書 金縢〉)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