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煕元年春正月에 上御奉天門朝群臣하고 命禮部鴻臚寺不作樂하고 群臣止行五拜三叩頭禮하다
先是에 禮部尙書呂震請曰 陛下初登大寶하사 天下文武群臣及海外諸國皆來朝하니 宜受賀作樂如大朝之儀라한대 不從이라
次日에 震固請之한대 大學士楊士奇楊榮金幼孜黃淮進曰 陛下言是라하니 上曰 山陵甫畢事어늘 忍遽卽吉가 朕은 明日亦不欲見群臣이라하다
震曰 四方萬國之人遠朝新主하고 皆欲一睹天顔하니 固聖孝誠至이나 亦宜勉徇下情이라하니 上顧士奇等四人曰 禮過矣라하다
對曰 誠如聖諭라 必欲俯徇輿情인댄 亦不宜備禮라하니 上從之하고 遂有是命이라
홍희洪煕 원년元年(1425) 봄 정월에 인종이
봉천문奉天門에 행차하여 여러 신하들의
조회朝會를 받고
예부禮部 에 명하여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게 하고 여러 신하들은
만 행하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예부상서禮部尙書 여진呂震이 청하기를, “폐하께서 처음
에 오르시어 천하의
문무文武 군신群臣 및
해외海外 여러 나라가 모두 와서 조회하였으니, 의당 경하를 받고 음악을 연주하기를
의
의례儀禮와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따르지 않았다.
다음날
여진呂震이 굳이 청하였는데,
대학사大學士 양사기楊士奇·
양영楊榮·
김유자金幼孜·
황회黃淮가 나아와 말하기를,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니, 인종이 이르기를, “
산릉山陵의 일을 이제 겨우 마쳤는데 차마 갑자기
할 수 있겠는가? 짐은 내일도 여러 신하들을 보고자 하지 않는다.” 하였다.
여진이 말하기를, “사방四方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멀리 와서 새 황제에게 조회하고 모두 한 번 천안天顔을 우러러 보고자 하니, 실로 폐하의 효심이야 참으로 지극하지만 또한 의당 아랫사람들의 정情을 힘써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하니, 인종이 양사기 등 4인人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예禮가 지나치다.” 하였다.
이에 양사기 등이 대답하기를, “참으로 폐하의 말씀과 같습니다. 반드시 아래로 여정輿情을 따르려 한다면 또한 예禮를 다 갖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니, 인종이 그대로 따르고, 마침내 이렇게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