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甲은 成湯之嫡長孫也라 元祀十有二月乙丑에 伊尹이 祠于先王할새 奉太甲하야 祗見厥祖어늘 侯甸群后咸在하며 百官総己하야 以聽冢宰어늘
其略曰 今王이 嗣厥德하신댄 罔不在初하니 立愛惟親하시며 立敬惟長하사 始于家邦하사 終于四海하소서
太甲旣立에 不明하야 暴虐不遵湯法하고 亂德이어늘
伊尹이 乃言曰 愼乃儉德하사 惟懷永圖하소서 若虞機張이어든 往省括于度則釋이니 欽厥止하사 率乃祖攸行하소서
王未克變한대 伊尹曰 玆乃不義는 習與性成이로소니 予弗狎于弗順케호리라하고 營于桐宮하야 密邇先王其訓하야 無俾世迷케하니라
太甲이 居桐三年에 自怨自艾하야 處仁遷義어늘 惟三祀十有二月朔에 伊尹이 以冕服으로 奉太甲歸于亳하다
作書曰 民非后면 罔克胥匡以生이며 后非民이면 罔以辟四方하리니 皇天이 眷佑有商하사 俾嗣王으로 克終厥德하시니 實萬世無疆之休삿다
王拜手稽首曰 予小子는 不明于德하야 自底不類하야 欲敗度하며 縱敗禮하야 以速戾于厥躬호니 天作孽은 猶可違어니와 自作孽은 不可逭이니 旣往에 背師保之訓하야 弗克于厥初호니 尙賴匡救之德하야 圖惟厥終하노이다
太甲이 增加修德한대 諸侯咸歸殷하야 百姓以寧하니라 在位三十有三年이요 號曰太宗이라
4-2-1 태갑은 성탕成湯의 적장손嫡長孫이다. 원년元年 12월 을축일乙丑日에 이윤伊尹이 선왕先王에게 제사 지낼 때에 태갑을 받들어 공경히 그 조부를 뵈었는데, 이때 후복侯服과 전복甸服의 여러 제후諸侯들이 모두 있었으며 백관百官들이 자기의 직책을 총괄하여 총재冢宰에게서 명령을 들었다.
이에 이윤이 성탕이 이룩한 덕德을 분명히 말하여 왕에게 훈계하였다.
그 대략에 “이제 왕께서 그 덕을 이으려 하신다면 모든 것이 즉위하는 초기에 달려 있으니, 사랑을 세우되 어버이로부터 하시며 공경을 세우되 어른으로부터 하시어, 집과 나라에서 시작하여 사해四海에서 마치소서.” 하였다.
태갑이 즉위하고 나서 지혜가 밝지 못하여 포학하고 성탕의 법을 따르지 않고 덕을 어지럽히자
이윤이 말하기를, “
검약儉約한 덕을 삼가여 영구한 도모를 생각하소서. 〈왕의 행실은〉
우인虞人이 쇠뇌에
기아機牙를 장착하였거든 가서 화살 끝이 법도에 맞는가를 살피고 제대로 되었다면 발사하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이니, 그 행동을 공경히 하여 당신의
선조先祖가 행하신 바를 따르소서.” 하였다.
桐宮思訓圖
왕이 옛 습관을 바꾸지 못하자 이윤이 말하기를, “이 의롭지 못함은 습관이 천성天性처럼 이루어졌기 때문이니, 나는 의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과 가까이 있지 않겠다.” 하고 동桐 땅에 궁궐宮闕을 지어서 선왕先王을 가까이하여 이로써 가르쳐서 평생토록 혼미함이 없게 하였다.
태갑이 동궁桐宮에서 지낸 지 3년 만에 잘못을 뉘우쳐 자신을 원망하고 다스려서 인仁에 처處하고 의義로 옮기거늘 3년 12월 초하루에 이윤이 면복冕服을 갖추고 태갑을 받들어 박亳으로 돌아왔다.
이윤이 글을 짓기를, “백성은 군주가 아니면 서로 바로잡아 살 수가 없으며, 군주는 백성이 아니면 사방에 군주 노릇 할 수가 없으니, 황천皇天이 우리 상商나라를 돌아보고 도우시어 사왕嗣王으로 하여금 능히 그 덕을 마치게 하였으니, 이는 실로 만세토록 무궁無窮한 아름다움입니다.” 하였다.
왕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이르기를, “나 소자小子는 덕에 밝지 못하여 스스로 불초不肖함에 이르러 욕심으로 법도를 무너뜨리고 방종으로 예禮를 무너뜨려 이 몸에 죄를 불렀으니, 하늘이 지은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재앙은 도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사보師保의 가르침을 저버려 그 처음에는 잘하지 못했으나 부디 바로잡아준 덕을 힘입어 그 끝을 잘 마칠 것을 도모하겠습니다.” 하였다.
태갑이 더욱더 덕을 닦자 제후들이 모두 은殷나라로 돌아와서 백성들이 편안하였다. 재위 기간은 33년이었고, 묘호廟號는 태종太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