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歷代君鑑(2)

역대군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역대군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5-1-22
○二月 立皇子恭王惇하야 爲皇太子하고 尋以王十朋陳良翰으로 爲太子詹事하고으로 國子司業兼太子侍讀하다
先是 帝謂輔臣曰 古人以敎子爲重하니 其事備見於文王世子 須當多置僚屬하고 博選忠良하야 使左右前後罔匪正人이니 不然이면 一薛居州 亦無益也라하니
胡銓請飭太子賓僚하야 勸講한대 帝曰 三代長且久者 由輔導太子得人所致 末世國祚不永 皆由輔導不得其人이라하다


25-1-22
2월에 황자皇子 공왕恭王 을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고, 얼마 후 태자첨사太子詹事로 삼고 유돈劉焞국자사업國子司業 겸태자시독兼太子侍讀으로 삼았다.
이보다 앞서 효종이 보신輔臣들에게 이르기를, “고인古人은 자식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으니, 그 일이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잘 갖추어져 있다. 모름지기 요속僚屬을 많이 두고 충량忠良한 선비를 널리 선발하여 전후좌우에 모두 바른 사람들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의 만으로는 또한 무익無益할 것이다.” 하였다.
호전胡銓태자太子빈료賓僚들에게 신칙하여 권강勸講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효종이 이르기를, “ 삼대三代장구長久하게 국운國運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태자를 보도輔導하는 데에 적임자를 얻었기 때문이고, 말세末世국조國祚가 길지 않았던 이유는 모두 보도輔導에 적임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王十朋 : 1112~1171. 호는 梅溪, 자는 龜齡, 시호는 忠文이다. 紹興年間에 廷對를 충직하게 하여 高宗이 친히 제일인자로 발탁하였다. 孝宗 때는 饒州, 夔州 등 여러 고을을 맡아 선정을 펼쳤다. 관직은 太子詹事에 이르렀고, 龍圖閣學士로 致仕하였다. 저서에 ≪梅溪集≫, ≪春秋尙書論語解≫ 등이 있다.
역주2 陳良翰 : 宋나라 台州 臨海 사람으로 자는 邦炎이다. 高宗 紹興 5년(1135)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瑞安縣令이 되었다. 孝宗 초에 右正言과 左司諫을 역임하며 時事를 논하여 국정을 보좌하였으며, 뒤에 太子詹事 兼侍講이 되었다.
역주3 薛居州 : 춘추시대 宋나라의 어진 선비이다. 戴不勝이 왕을 착하게 인도하기 위해 그를 항상 왕의 곁에 있게 하였는데, 이에 대해 孟子가 “임금의 처소에 있는 자들이 모두 설거주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선한 일을 하겠는가. 한 명의 설거주가 홀로 송왕에게 어찌할 수 있겠는가.[在王所者 王幼卑尊 皆非薛居州也 王誰與爲善 一薛居州 獨如宋王何]” 하여, 아무리 薛居州처럼 훌륭한 선비일지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小人들 속에 싸여 있는 임금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가 어렵다고 한탄했던 故事가 있다.(≪孟子≫ 〈滕文公 下〉)
역주4 (享)[焞] : 저본에는 ‘享’으로 되어 있으나, ‘享’은 朝鮮 肅宗 李焞의 이름을 避諱하기 위해 ‘火’를 탈락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 글자인 ‘焞’으로 돌려놓았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