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月에 詔以室廬墊傷하야 被溺者衆하고 大田之稼는 害于有秋니 許中外臣僚는 實封言時政闕失하야 無有所諱하고 執政大臣은 其協德交修하야 輔朕不逮하라
初學士草詔云 惕思天變이라하니 帝書其後曰 淫雨爲災는 專戒朕不德이라하고 命更曰 協德交修라하다
8월에 조서를 내리기를, “백성들의 집이 물에 잠겨서 익사溺死한 자가 많고 대전大田의 농사가 곡식이 여물 때에 수해水害를 입었으니, 중외中外의 신료들은 상소하여 시정時政의 잘못을 숨김없이 말하고, 집정대신執政大臣들은 서로 협력하여 여러모로 나를 경계시켜 짐이 미치지 못한 점을 보완하라” 하였다.
처음에
학사學士가 조서의 초안을 작성할 때 “
천변天變을 두려워하라.[
척사천변惕思天變]”라고 하니, 영종이 그 뒤에 쓰기를, “장마가 재앙이 된 것은 전적으로 짐의 부덕을 경계한 것이다.”라고 하고, “서로 협력하여 여러모로 나를 경계시키라.[
협덕교수協德交修]”로 고치라고 명하였다.
한기韓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