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宛人卓茂는 寬仁恭愛하고 恬蕩樂道하며 雅實不爲華貌하고 行己在於淸濁之間하야 自束髮至白首히 未嘗與人有爭競하니 鄕黨故舊雖行能與茂不同이나 而皆愛慕欣欣焉이러라
哀平間에 爲密令한대 視民如子하야 擧善而敎하고 口無惡言하니 吏民親愛하야 不忍欺之러라
及王莾居攝에 以病免歸라 帝卽位에 先訪求茂하니 茂時年七十餘라
詔曰 夫名冠天下면 當受重賞이니 今以茂爲太傅하고 封褒德侯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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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宛 사람
는 너그럽고 인자하고 공손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담박하고 편안하고
도道를 좋아하였다. 평소
신실信實하여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총각 때부터
노년老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과 경쟁한 적이 없었으니,
향당鄕黨의 벗들이 비록 행실과 재능이
탁무卓茂와 같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를 좋아하고 사모하여 기뻐하였다.
애제哀帝와 평제平帝 연간에 밀현密縣의 영令이 되었는데, 백성들을 자식처럼 여겨 선善한 사람을 천거하여 교화를 행하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니, 관리와 백성들이 친애親愛하여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몇 년 만에 교화가 크게 행해져서 길에 버려진 물건이 있어도 사람들이 줍지 않을 정도로 풍속이 순후하게 되었다.
경부京部의 승丞으로 옮기게 되자 밀현密縣 사람들이 늙은이와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따라와 전송하였다.
왕망王莽이 섭정攝政할 때에는 병으로 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광무제가 즉위했을 때 먼저 탁무를 찾았으니, 당시 탁무의 나이 70여 세였다.
조서詔書를 내려 이르기를, “이름이 천하에 으뜸이 되었으면 마땅히 무거운 상을 받아야 하니, 지금 탁무를 태부太傅로 삼고 포덕후褒德侯에 봉하도록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