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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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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5
○帝奉命征雲南하고 於曲先腦兒之地夜宴 姚樞陳宋太祖遣曹彬取南唐할새 不殺一人하니 市不易肆事
明日 帝據鞍呼樞曰 汝昨日言曹彬不殺하니 吾能爲之吾能爲之호리라 樞馬上謝曰 仁明如此하니 生民之幸이요 有國之福也로소이다


28-1-5
세조가 헌종憲宗의 명을 받들어 운남雲南을 정벌하고 곡선뇌아曲先腦兒 땅에서 밤에 연회를 베풀 때에, 태조太祖을 파견하여 남당南唐을 취할 때 무고한 백성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자 저자에서 장사치들이 가게를 옮기지 않았던 일을 아뢰었다.
다음날 세조가 말안장에 기대어 요추를 불러 이르기를, “그대가 어제 나에게 조빈曹彬이 무고한 백성을 죽이지 않았던 일을 말해주었으니, 내가 능히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능히 그렇게 할 것이다.” 하니, 요추가 말 위에서 사례하기를, “어질고 명철하기가 이와 같으시니, 이는 백성들의 행운이요 국가의 복입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姚樞 : 1202~1279. 元나라 洛陽 사람으로, 자는 公茂, 호는 雪齋 또는 敬齋, 시호는 文獻이다. 憲宗이 忽必烈에게 漢地를 모두 다스리게 하려고 했는데, 그가 이를 거절할 것을 권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였다. 원나라가 大理를 멸망시킬 때 宋 太祖가 曹彬을 보내 南唐을 취하면서 한 사람도 죽이지 않은 사실을 알려 대리의 주민들이 온전하게 살 수 있게 했다. 世祖가 즉위하자 東平宣撫使에 오르고, 大司農을 거쳐 中書左丞에 올랐다. 宋나라를 정복할 때 역시 살육을 금하는 조서를 내리게 하고, 송나라의 酷刑인 鞭背나 黥面 등을 금지할 것을 주청했다. 昭文館大學士와 翰林學士承旨까지 올랐다. 程朱理學의 전파를 평생 자신의 소임으로 생각했고, 양유중과 함께 太極書院을 건립해 조복을 스승으로 모시고 인재들을 가르쳐 道學이 북방으로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역주2 曹彬 : 931~999. 宋나라 초기 眞定 靈壽 사람으로, 자는 國華이다. 太祖 乾德 2년(964)에 蜀을 정벌하고 都監이 되어 峽中의 군현을 함락했는데, 청렴하고 성실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悅服했다. 開寶 7년(974)에 昇州西南路行營馬步軍戰櫂都部署에 임명되어 南唐을 토벌하여 마지막 임금인 李煜의 항복을 받았는데, 이 싸움에서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지 않으니, 시장 사람들은 가게를 떠나가지 않고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귀환하여 樞密使와 檢校太尉, 忠武軍節度使를 역임했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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