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黯爲謁者러니 以數切諫으로 不得留內하고 遷爲東海守하니 歲餘에 東海大治어늘 召爲主爵都尉하니 其治務在無爲하야 引大體不拘文法이러라
時에 天子方招文學하야 嘗曰 吾欲云云하노라 黯對曰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하시니 柰何欲效唐虞之治乎잇가
群臣或數黯한대 黯曰 天子置公卿輔弼之臣은 寧令從諛承意하야 陷主於不義乎아 且已在其位면 縱愛身이나 柰辱朝廷何오
黯多病하야 賜告者數로되 不愈어늘 莊助復爲請告한대
上曰 汲黯何如人哉오 助曰 使黯任職居官은 無以踰人이나 然至其輔少主면 守成深堅하야 招之不來하고 麾之不去하야 雖自謂賁育이라도 亦不能奪之矣니이다
8-1-5
건원建元 6년(B.C. 135) 가을에
을
주작도위主爵都尉로 삼았다.
그전에 급암이 알자謁者가 되었는데 자주 직간直諫을 하였기 때문에 내직에 있지 못하고 외직으로 옮겨 동해태수東海太守로 나가게 되었다. 한 해 남짓 지나서 동해가 크게 다스려지자 불러들여 주작도위主爵都尉를 삼았는데, 그의 다스림은 무위無爲를 힘써서 대체大體만을 이끌어 가고 작은 법문에는 구애받지 않았다.
성품이 거만하고 예의는 부족하여 남의 잘못을 면전에서 꾸짖어 용납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천자가 문학文學이 뛰어난 인물들을 초빙하여 일찍이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고자 하노라.” 하니, 급암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안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밖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풀고자 하시니, 어떻게 요순堯舜의 다스림을 본받으려고 하십니까.” 하였다.
무제가 노하여 조회를 파하고 근신들에게 말하기를, “심하도다. 급암의 우직함이여!”라고 하였다.
신하들 중에 어떤 사람이 급암을 꾸짖자 급암이 말하기를, “천자가 공경公卿 등 보필하는 신하를 둔 것은 어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어 임금을 불의에 빠뜨리게 하려고 해서이겠는가. 그리고 이미 그 지위에 있으면 비록 자신을 아끼더라도 조정을 욕되게 하는 것은 어찌한단 말인가.” 하였다.
급암이 병이 많아 자주 휴가를 주었으나 낫지 않자 장조莊助가 다시 휴가 주기를 청하자
무제가 말하기를, “급암은 어떤 사람인가?” 하니, 장조가 대답하기를, “급암으로 하여금 직책을 맡아 관직에 있게 하면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지만 어린 임금을 보필하게 하면
왕업王業을 매우 견고히 지켜서 불러도 오지 않고 쫓아도 가지 않아서
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그 뜻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무제가 말하기를, “그렇다. 옛날에 ‘사직지신社稷之臣’이 있었는데 급암 같은 사람이 거기에 가깝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