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年에 上與宰相論元和循吏孰爲第一고하야늘 周墀曰 臣嘗守土江西하니 聞觀察使韋丹功德이 被於八州하야 沒四十年에 老稚歌思 如丹尙存이니이다
詔史館修撰杜牧하야 撰丹遺愛碑以紀之하고 仍擢其子河陽觀察判官宙하야 爲御史하다
대중大中 3년(849)에 선종이 재상과
원화연간元和年間의
순리循吏 중에 누가 제일인지를 논하였는데,
가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강서관찰사江西觀察使을 지냈는데 그때 들으니 관찰사
의 공덕이 8
주州에 두루 입혀져 그가 죽은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늙은이부터 어린이까지 그를 노래하고 그리워하기를 위단이 살아 있을 때처럼 한다고 합니다.” 하였다.
사관수찬史館修撰 에게 명을 내려 위단의
유애비문遺愛碑文을 지어서 기록하게 하고, 이어 그의 아들
하양관찰판관河陽觀察判官 를 발탁하여
어사御史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