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沈謀英斷하야 慨然有削平天下之志하고 旣卽大位에 陳洪進錢俶이 相繼納土하고 未幾에 取太原하고 伐契丹하고 繼有交州西夏之役하야 干戈不息하고 天災方行하야 俘馘日至로되 而民不知兵하며 水旱螟蝗이 殆徧天下로되 而民不思亂하니 其故何也오
帝以慈儉爲寶하고 服澣濯之衣하고 毁奇巧之器하고 却女樂之獻하고 悟畋遊之非하고 絶遠物하고 抑符瑞하고 閔農事하고 考治功하고 講學以求多聞하고 不罪狂悖하야 以勸諫士하고 哀矜惻怛하야 勤以自勵하야 日晏忘食하고
至於欲自焚以答天譴하며 欲盡除天下之賦하야 以紓民力하야 卒有五兵不試禾稼荐登之效라 是以靑齊耆耋之叟 願率子弟治道請登禪者 接踵而至하니
君子曰 得乎丘民而爲天子라하니 帝之謂乎인저 故帝之功德이 炳煥史牒하야 號稱賢君하니라 若夫太祖之崩이 不踰年而改元하고 涪陵縣公之貶死와 武功王之自殺과 宋后之不成喪은 則後世不能無議焉이니라
“태종은 계획이 치밀하고 영명英明하고 과단하여 개연히 천하를 평정할 뜻이 있었다. 제위에 오른 뒤에는 진홍진陳洪進과 전숙錢俶이 서로 이어 땅을 바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원太原을 취하고 거란契丹을 정벌하고, 이어서 교주交州와 서하西夏를 정벌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자연 재해가 유행하여, 포로와 죽인 적의 수효가 날마다 보고되었는데도 백성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수재와 한재와 메뚜기의 재해가 거의 천하에 두루 유행하였는데도 백성들은 난리를 일으킬 것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태종이 자애롭고 검소함을 보배로 여기고, 세탁한 옷을 입고, 기묘하게 만든 물건을 부숴버리고, 헌상한 여악女樂를 물리치고, 사냥의 잘못을 깨닫고, 먼 지방에서 나는 물건을 거절하고, 부서符瑞를 배척하고, 농사를 근심하고, 다스린 공적을 고찰하고, 강학講學하여 다문多聞을 구하고, 광망하고 패역스러운 말을 하여도 벌하지 않아서 간언하는 사람을 권면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 부지런함으로 스스로 면려하여 날이 저물도록 식사하는 것을 잊었다.
심지어 자신의 몸을 불태워 하늘의 꾸짖음에 답하려고 하고, 천하의 세금을 모두 면제하여 백성들의 힘을 펴주려고 하여 끝내 군대를 쓰지 않고 농사가 연이어 풍년이 든 효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청주靑州와 제주齊州의 연로한 늙은이들이 자제를 이끌고 길을 닦고 태산泰山에 올라 봉단封單을 행하기를 청하는 자가 연이어 이르렀다.
라고 하였으니, 태종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태종의
공덕功德이 역사에 찬란하게 드러나
현군賢君이라고 일컬어졌다. 그리고 태조가 붕어하고 나서 그해를 넘기지 않고
개원改元한 것과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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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후세에 의론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