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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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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군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齊人婁敬 戍壟西하야 過洛陽하야 求見上曰 陛下都洛陽하시니 豈欲與周室比隆哉 上曰 然하다
敬曰 陛下取天下 與周異하니 周自后稷으로 積德累善하야 十有餘世 至于文武而諸侯自歸之어늘 遂滅殷爲天子
及成王卽位 周公相焉하야 乃營洛邑하야 以爲此天下之中也 諸侯四方納貢職 道里均矣
有德이면 則易以王이요 無德이면 則易以亡이니 故周之盛時 諸侯四夷 莫不賓服이러니 及其衰也 天下莫朝호되 周不能制하니 非唯德薄이라 形勢弱也
今陛下起豐沛하야 卷蜀漢定三秦하야 與項羽戰滎陽成皋之間하야 大戰七十이요 小戰四十
使天下之民으로 肝腦塗地하야 哭聲未絶하고 傷者未起어늘 而欲比隆於成康之時하니 臣竊以爲不侔也라하노이다
夫秦地被山帶河하고 四塞以爲固하니 卒然有急이면 百萬之衆 可立具也
夫與人闘 不搤其亢拊其背 未能全其勝也 今陛下按秦之故地 此亦搤天下之亢而拊其背也니이다
帝問群臣한대 群臣皆山東人이라 爭言 周王數百年이요 秦二世卽亡이라 洛陽東有成皋하고 西有殽澠하고 背河嚮洛하니 其固亦足恃也니이다
上問張良한대 良曰 洛陽雖有此固 其中小하야 不過數百里 田地薄하고 四面受敵하니 非用武之國也
關中左殽函하고 右壟蜀이요 沃野千里 南有巴蜀之饒하고 北有胡苑之利하니 阻三面而守하고 獨以一面으로 東制諸侯
諸侯安定이면 河渭漕輓天下하야 西給京師 諸侯有變이면 順流而下하야 足以委輸 此所謂金城千里天府之國이라 敬說是也니이다
上卽日西都關中하고 拜敬郞中하야 號奉春君이라하고 賜姓劉氏하다


6-1-13 사람 누경婁敬농서壟西에 수자리 살러 가면서 낙양에 들러 고제를 뵙기를 청하여 고제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낙양에 도읍하신 것은 나라처럼 융성하기를 바라서가 아닙니까?” 하니, 고제가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누경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천하를 취한 것은 주나라와 다릅니다. 주나라는 후직后稷으로부터 덕을 쌓고 선을 쌓아 10여 가 지나 문왕文王무왕武王에 이르러 제후들이 스스로 귀의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자가 되었습니다.
성왕成王이 즉위함에 이르러 주공周公이 도와서 마침내 낙읍洛邑을 조성하여, ‘이곳이 천하의 중심이 되니 제후들이 사방에게 조공朝貢을 바칠 때에 거리가 균등하다.’고 하였습니다.
〈낙양은〉 덕이 있으면 왕 노릇 하기 쉽고 덕이 없으며 망하기 쉬우니, 그러므로 주나라가 융성할 때에는 제후들과 사방의 오랑캐가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주나라가 쇠함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조공을 바치는 자가 없었지만 주나라가 제어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덕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힘이 약해서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풍패豐沛에서 일어나 촉한蜀漢석권席卷하고 삼진三秦을 평정하여 항우와 형양滎陽성고成皐 사이에서 싸웠는데 큰 전투가 70회이고 작은 전투가 40회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천하 백성으로 하여금 전투에서 참혹하게 죽게 하여 아직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부상당한 자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주나라의 성왕成王이나 강왕康王 때처럼 융성하기를 바라시니, 신은 삼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땅은 산을 등지고 강을 띠처럼 두르고 있고 사방이 막혀서 견고하므로 갑자기 위급한 일이 생기면 백만의 군대를 곧바로 동원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남과 싸울 때에 그 목을 누르고 그 등을 치지 않으면 완전히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진나라의 옛 땅을 차지하셨으니, 이 또한 천하의 목을 누르고 그 등을 치는 격입니다.” 하였다.
고제가 신하들에게 물으니, 신하들이 모두 산동山東 사람이라서 다투어 말하기를, “주나라는 수백 년 동안 왕 노릇을 하였고 진나라는 2 만에 망하였습니다. 낙양은 동쪽에 성고成皐가 있고 서쪽에 효산殽山면지澠池가 있고 황하를 등지고 낙수洛水를 앞에 두고 있으므로 그 견고함 또한 믿을 만합니다.” 하였다.
고제가 장량에게 물으니, 장량이 대답하기를, “낙양이 비록 이런 견고함이 있으나 그 안쪽이 좁아서 수백 리에 불과합니다. 전지田地는 척박하고 사방에서 적을 받는 지세이므로 무력을 쓸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관중關中은 왼쪽에 효산殽山함곡관函谷關이 있고, 오른쪽에 농산隴山서촉西蜀이 있으며, 비옥한 들이 천 리이고, 남쪽에는 파촉巴蜀의 풍요가 있고 북쪽에는 호원胡苑의 이로움이 있으니, 남쪽과 북쪽과 서쪽의 험조한 지형에 의지해 지키고 동쪽 한 쪽을 터서 제후들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제후들이 안정되어 있으면 황하와 위수渭水을 통해 천하의 세곡을 운송하여 서쪽으로 경사京師에 공급하고, 제후들에게 변고가 있으면 물길을 따라 내려가서 운송할 수 있으니, 이곳이 이른바 금성金城(철옹성)이 천 리이고 천부天府(곳간과 같이 풍요로운 땅)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누경의 말이 옳습니다.” 하니,
고제가 당일에 서쪽으로 가서 관중을 도읍으로 삼고 누경을 낭중에 임명하여 칭호를 봉춘군奉春君으로 하고 유씨劉氏 성을 하사하였다.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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